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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피플 | DailyPeople

전창관의 방콕단상斷想(2) 韓流가 寒流 아닌 韓留로 머물게 하려면!

韓流가 寒流 아닌 韓留로 머물게 하려면!

 

작년 말경의 태국 국왕 서거 국상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지고, 포고령에 의한 각종 엔터테인먼트 공연 금지령이 해금되자 다시금 본국의 각종 연예공연들이 방콕의 이곳저곳에서 열리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항간에 한류의 확산이 정점에 이르렀느니,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다느니 하는 소리들이 들리곤 하여 관계자들로 하여금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한류’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보면, 한류의 ‘류’는 항간에 ‘흐르는 유행’이라는 의미의 ‘流’로서 흔히들 영문으로 ‘Korean Wave’ 라고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파도나 조류의 ‘Wave’를 뜻한다. 따라서, ‘한류’를 이처럼 한국 연예계의 일시적인 권역국가별 진출이라는 소극적 측면에 국한해 생각한다면 ‘영미계의 팝송’ 또는 ‘프랑스의 샹송’ 내지는 ‘이탈리아의 칸초네’ 등과 같은 지구촌 대중문화의 한 장르와는 다른 한계성을 지닐 수 있다는 관점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한류를 운동에너지 변속선의 한 정점에 머물러 해석할 것이 아니라 ‘운동에너지의 총합은 일정하다는 에너지 보존법칙’ 측면에서 접근한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한류의 총 에너지가 지구상에 지속적인 에너지 총합으로 머무르며 역동케 해야 한다는 관점인데,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경제력, 외교력, 민주화 성숙도 등이 없었다면 작금의 한류는 생성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점을 상기시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동남아나 중남미에도 시기적으로 유명해진 대중가수들이 있고, 국민성 자체가 대중문화 예술을 유난히 즐기기도 하지만 ‘동남아류’라든가 ‘중남미류’ 같은 것이 형성된 바가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기도 한데, 이는 결국 한류가 형성된 배경이 저간의 한국의 국력 융성과 맥을 같이해 왔다는 부분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소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지구촌 중심축 국가의 문화양상으로서의  ‘한류’가 차디찬 한류(寒流)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세계인이 즐겨 쓸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 및 보유할 수 있는 산업경제력’이 요구된다. 둘째는 ‘브랜드 파워’로서 한국의 외교력과 군사력이 융성해야 함이고, 셋째는 한국 국민들이 다른 국가의 사람들과 포괄적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할 수 있는 영향력과 여론 지배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들이 유기적으로 합쳐질 때 국격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며 더불어 각종 공연기획사나 개별 대중연예인들이 창출해 내는 ‘문화예술 디테일링’과 그 구성원들의 탁월한 재능이 한층 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에 재론의 여지가 있을수 없다.


이제 한류는 어떤 특정 연예문화집단의 특정 지역에 대한 일시적 트렌드 셋팅(Trend Setting)이 아닌,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속의 중심국가로 온전히 자리매김하는 과정의 일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고개를 돌려 본국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할 때면, 정치경제, 사회문화뿐 아니라 교육과 스포츠 등 거의 사회 전반에 걸친 악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는 형국임에, 그런 대한민국의 부문별 사회산업 구조와 맥을 함께하는 ‘한류(韓流)’가 유행류자의 한류가 아닌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머무르는 머무를 류자 한류(韓留)로 오랫동안 고착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런 제반 국가 인프라의 재도약적 융성을 위한 한국사회의 전반적 구조개혁과 변혁이 시급히 요구됨이 명확하다.


훌륭한 예술성과 창의적 대중문화 예술인들이, 그간 힘들여 개척해 놓은 문화인프라 위에서 더는 흐트러짐 없이 다시금 날로 융성해지는 대한민국의 국격 상승의 한마당에서 한바탕 흐드러지게 춤추게 하고 싶음은 온 국민 모두의 소망임을 다시 말해 무엇할까 싶다.

 

전창관(맨테크 커뮤니케이션즈 / 더비빔밥 대표이사)

 

 

 

사진 출처: 더비빔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