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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피플 | DailyPeople

남들 다 가는 스페인, 포르투갈<7> 대항해 시대 제국의 영광을 찾아서다

-리스본-호시우 광장-상 조르제 성-코메르시우 광장

 

리스본으로 가다
새벽까지 계속 비 오는 소리가 났다. 밤새 온 모양이다. 작은 창문을 열어 내다보니, 호텔 앞 작은 골목길은 밤사이 술 취한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조용히 비를 맞고 있다. 오늘은 스페인 여행을 마무리하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는 날이다. 택시를 타고 아토차(Atocha) 역으로 갔다. 공항에서 올 때와는 달리, 203번 공항버스를 타고 40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지하철을 타면 한 두 번 환승을 해고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버스는 그럴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돈은 좀 아낄 수 있지만 여행가방을 끌고 걷고, 환승하는 건 힘들다, 휴~

마드리드에서 리스본까지는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의 비행 시간과 비슷하다(1시간 25분 소요). 리스본은 마드리드 보다 1시간 시차가 나서 시간상으로는 25분 만에 도착이다.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예매할 때 시차 생각은 못하고 시간 표시가 잘못된 줄로만 알았다. 공항에서는 전자 체크인을 하면 빠른 수속을 할 수 있다. 공항직원들이 너무나도 여유만만하게 일을 해서 좀 체 긴 줄이 줄어들지 않으니, 비즈니스 줄이 비어 있으면 눈치껏 가서 수속하는 것도 요령이다.

리스본 포르텔라 공항에서는 시내 숙소까지 택시를 탔다. 구글로 검색해 보니 택시비가 10유로 내외로 생각보다 저렴했다. 택시비는 스페인보다 포르투갈이 더 싸다. 요금 정산도 정확하게 하고 택시 기사는 짐 실을 때, 내릴 때 꼭 내려서 짐을 옮겨준다 (한국에서도 이러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 택시기사는 왠만해서는 내려서 승객을 도와주지 않는다.). 택시 미터보다 1유로 정도 더 주면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택시를 이용할 경우에는 항상 잔돈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20, 50유로 지폐를 주면 잔돈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포르투갈식 스테이크, 상 조르제 성에서 내려오는 길가에서 들른 작은 카페

리스본의 숙소는 구도심에 위치한 Hotel Inn Rossio(2박, 32만 원)다. 근처에 호시우 광장(Plaza Rossio), 산 후스타 엘리베이터가 있고, 신트라(Sintra)행 기타를 탈 수 있는 호시우 역도 5분 거리다. 걸어서 30분 거리에 성 조르제 성(Castelo de Sao Jorge)도 있는 곳이라 허름한 호텔임에도 가격이 비싸다. 이렇게 관광지 중심에 숙소를 잡으면 걸어서 다니기에 좋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지만 가격은 공항 근처보다 두배 이상 비싸다.

호텔에 가방만 맡겨두고 호텔 바로 앞에 있는 길가 카페에서 점심도 먹으면서 세부 일정을 다시 짰다. 여행 중에는 늘 배가 고프다. 특히 유럽 여행할 때는 더 한데, 주로 빵으로 끼니를 때워서 그렇다. 밥 생각이 날때는 간간이 빠에야를 먹으면서 해결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KFC에 가서라도 한 두 번 정도 고기를 먹어줘야 한다. 그래야 기운을 차리고 부지런히 걸을 수 있다. 하긴 빵 먹으면서 많이 걸으니 얼굴상이 빠져서 사진 하나는 잘 나온다.

점심 메뉴는 포르투갈식 스테이크(Steak Portugese style, 15유로), 야채샐러드(Mixed salad, 4.5유로), 그리고 맥주 한 잔이다. 샐러드야 어디를 가던 비슷할 테고, 포르투갈식 스테이크는 어떻게 나올지, 맛을 어떨지 궁금했다. 웨이터가 들고 온 스테이크가 독특하다. 스테이크에 국물이 넉넉한 소스(겨자, 마늘, 소금, 후추, 올리브유 등)를 끼얹었다. 맛은 매우 짠데, 스테이크를 찍어서 먹으니 별미다. 스테이크는 살코기가 많아 몇 점 잘라 먹고나면 금방 물리는데, 국물 소스랑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입에 착 감긴다. 포르투칼 스테이크를 먹으면서도 삼겹살 생각이 간절했다.

상 조르제 성으로 올라는 길가의 주택과 리스본 호시우 광장의 바닥

방콕에 도착하면 집 바로 앞에 있는 한국식당에 가서 삼겹살을 실컷 먹어야지~

첫 방문지는 숙소에서 도보 30분 거리에 있는 상 조르제 성이다. 트램이나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걸어가기에도 좋은 거리다. 카페에서 계산을 하고 나와 호시우 광장 좌측 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여기도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많다. 약간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 들고 있는 셀카봉을 더 힘껏 쥐고 등 뒤의 가방도 혹시나 싶어 신경을 더 썼다. 그러면서 선입견과 편견이 이래서 무서운 거구나 싶었다.

내 속도 모른 채, 그들은 그저 동양에서 온 나를 신기한 듯이 쳐다볼 뿐인데 나는 아무 근거도 없이 겁을 지레 먹었다. 여행하는 동안 그들로부터 위협적인 말을 듣거나 행동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잘 살고 착하다는 생각, 저들은 못 살고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생각. 한참이나 부끄러웠다.


다소 심심한 상 조르제 성
오르는 길이 색다르다. 도로가 대부분 로마시대의 마차길이나 파리의 도로처럼 작은 돌을 촘촘히 박아 만들었다. 튼튼하기는 하겠지만 사람 손이 많이 갈 것 같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리스본 구도심 대부분의 도로는 아스팔트가 아니라 작은 돌로 만든 길이다. 버스를 타면 승차감이 끝내준다. 소음도 많이 나고 얼마나 덜컹거리는지. 관광객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지만, 시민들은 불편하기도 할텐데 오래전 길을 그대로 유지하는 걸 보면, 새 것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우리의 문화와는 무언가가 확연히 다르다. 전통과 문화는 거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집들도 벽을 타일로 마감을 해서 멋을 냈다. 하얀 바탕에 연한 파란색으로 무늬를 넣었는데, 내 눈에는 촌스럽게 보인다. 성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집들은 오래되어 그런지, 타일도 색도 바래고 떨어져 내린 부분도 있어 이 나라의 경제 사정을 어느 정도 짐작 할 수 있었다.

성 정문을 조금 못 가서 성당 한 곳을 만났다. 입구가 초라하고, 시커먼 그을음이 벽면 가득하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성당 안은 겉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성스럽고 따뜻한 기운이 내부에 가득했다.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다 다친 이들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몸과 마음의 치유를 받았으리라. 의자에 잠시 앉아 돔의 그림들과 제단 앞에 흔들리는 촛불을 보고 있으니 종교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 나오기 전에 제단 앞에 촛불 하나를 켜고 묵상을 했다.

마침내 상 조르제 성의 성문에 도착. 입장권을 사기 위한 줄이 한참이나 길다(입장료는 10유로). 성 안으로 들어갔더니 리스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 멀리 스페인에서부터 1,000킬로 미터 이상을 달려온 타구스강(또는 타호강)이 대서양으로 흘러나가고, 그 길목에 총길이 2,277미터의‘ 4월 25일 다리’가 있다. 그 오른쪽으로는 빨간 벽돌 지붕의 건물들이 카메라의 초점을 끌어당긴다. 길을 따라 성 안을 돌았다.

녹슨 대포, 깨어진 벽돌담, 어설프게 시멘트로 복원한 흔적들. 성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은 없어 심심했다. 성 안에 있는 카페 앞마당에서 만난 공작새가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 했다.

상 조르제 성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성당과 상 조르제 성벽


오락가락 빗속으로 사라진 영광
비가 오락가락한다. 화창하게 햇볕을 쏟아냈다가 다시 비를 뿌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새 눈이 시린 파란 하늘을 드러낸다. 대서양에 가까운 지형 탓인가 보다. 성에서 나와 바닷가에 있는 코메르시우 광장(Praca do Comercio)을 향해 걸었다. 이 도시는 스페인의 중세도시 톨레도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톨레도는 오래되었지만 잘 정돈되어 있고 깨끗하다. 리스본은 더 낡고 허름한다. 아마도 구도심은 관광지로 두기 위해 개발을 제한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어진 대항해 시대에 세계를 주름잡던 제국의 위용과 위세를 떠 올려 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또 비가 쏟아진다. 이번에는 빗방울이 제법 굵다. 급하게 근처 카페로비를 피해 들어갔다. 그렇잖아도 한 번은 먹어봐야지 하는 에그타르트가게다. 에그타르트와 탄투갈 등 세 가지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에그타르트 맛이 제일 낫다. 다른 종류는 너무 달아 먹기에 좀 거북하다. 이곳의 에그타르트의 고장이라고 하는데, 인터넷에 맛집이 여럿 올라와 있긴 한데 어디서 먹던 그 맛이 얼마나 다르겠다 싶다.(이 생각은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에 있는 벨렘 에그타르트를 먹어 본 후에 달라졌다.)

좁은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어 내려오다 보니 바다 같은 타구스 강이 보이는 커다란 광장이 나타났다. 코메르시우 광장이다. 광장 한가운데에 주제 1세의 커다란 기마상이 서 있다. 광장은 바닥 돌은 깨어지고 갈라져 빗물이 고여 다니기에 불편하다. 강가 쪽으로 내려갔다. 타구스 강물은 대서양의 물과 섞여 흐리고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난다. 갈매기와 새들이 뒤섞여 날고, 사람들과 자전거, 차들이 대서양의 햇볕 속에서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부딪친다.

코메르시우 광장과 리스본의 구도심 거리

[여행 Tip]
1. 리스본 구시가지는 걸어서도 충분히 관광할 수 있다.
2. 리스본은 비가 오락가락한다. 한바탕 쏟아지다가 다시 화창하게 개이기도 하니 작은 우산 하나는 꼭 지참.
3. 구시가지에 숙소를 정할 경우 호시오 광장 주변에 잡으면 호카곶 등 이동하기에 편리하다.
4. 리스본 시에는 슈퍼마켓 찾기가 힘들다. 호텔 nIn Rossio 1층에 큰 슈퍼마켓이 있다.(오렌지 주스가 아주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