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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보 다 로까로 가는 길, 신트라(Sintra)
리스본 여행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 여러 곳을 둘러보고도 오후 3~4시면 호텔로 돌아올 수 있다. 하긴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 많이 걸었으니, 포르투갈에서는 좀 일찍 들어와서 모자란 잠도 보충하고, 체력도 재충전하는 것이 좋다. 이 나이에는 더 그렇다. 물론 종일 같이 다니고도 여전히 쌩쌩한 아내의 잔소리는 감수해야 한다.
09:01에 출발하는 신트라(Sintra)행 기차를 탔다. 신트라는 포르투갈 최서단에 있는 관광지 까보 다 로까(Cabo da roca, 호카곶)로 가려면 거쳐가야 하는 인구 3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소도시다. 숙소가 호시오역 바로 옆이라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8:41 기차를 타려고 바삐 갔더니 그 시각 기차는 없다. 기차 시간이 바뀐 것인지 인터넷으로 찾아 본,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정보랑 시간이 안 맞다. 최근에 기차 시간이 바뀐 모양이다.
신트라까지는 기차를 타고,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려는 생각에, 기차표와 버스표를 각각 구매하려고 했는데 역무원이 ViVA카드를 내민다. 기차만 탈 거냐고 물어서, 버스도 타고 ‘까보 다 로까’까지 갈 거라고 했더니, 다음엔 train and bus라고 말하라고 구시렁거린다. ‘자쓱이 좀 친절하게 말하지, 다음에 올 일도 없다~’ 나도 속으로 한마디 해 줬다.
카드 값도 올랐는지 15.8유로+카드수수료 0.5유로 해서 1인당 16.3 유로다. 출발시간이 많이 남아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사 가지고 왔더니 벌써 사람들이 우르르 타고 있다. 후다닥 자리를 찾아 앉았다. 지정 자리가 없으니 먼저 타는 사람이 임자다. 늦게 탄 사람들은 서서 가기도 한다.
신트라 역까지는 40분이 걸린다. 중간에 몇 번 서기도 하는데 종착역인 신트라 역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린다. 내리는 사람들에 비해 역이 참 작다. 역을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다. 역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신트라의 관광지인 페나성과 헤갈레이아 별장을 갈 수 있는 434번 버스정류장이 있고, 왼쪽으로 돌면 호카곶으로 가는 403번 버스를 탈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트라 관광을 하고 호카곶으로 가려는지 오른쪽으로 몰려간다. 아마도 호카곳에서의 일몰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유 있는 관광을 즐기기 위해서는 때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신트라 관광은 포기하고 호카곶으로 바로 갔다.
434번 버스는 줄줄이 들어오는데, 403 버스는 30분마다 1대씩 온다.
사람이 몰릴 때는 버스를 여러 대 보내고서야 탈 수 있다고 하더니 그런 모양이다. 한참을 기다렸다 버스에 탔다. 버스는 깨끗하고 좋다. 신트라 시내에서 장을 보고 가는 길인지 짐을 한아름씩 들고 중간중간 노인들이 타고 내린다. 우리네 시골의 모습이랑 닮았다. 한국이나,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 곳이나 사람 사는 모양은 매한가지다. 잠시 후 시내를 빠져나가 꼬불꼬불 고갯길을 넘어 한참이나 달린다. 유라시아 대륙의 끝으로 간다는 두근거림과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가 겹치면서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유라시아 대륙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 까보 다 로까(Cabo Da Raca)
40여 분을 달려 멀미가 날 무렵이 되었을 때, 저 멀리 등대와 십자가 탑이 보인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여기가 바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구나.’ 가슴이 뛰었다. 버스에서 내렸더니 바람이 세차게 분다. 버스정류장 옆에 조그마한 관광안내소가 있고, 그 뒤로 바닷가 절벽까지 낮은 풀들이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노란 꽃을 피워내고 있다. 절벽 아래에는 저 멀리 아메리카 대륙에서 밀려온 파도가 부딪치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킨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시대의 사람들은 여기가 땅의 끝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내 나라, 내가 사는 대륙이 아닌데도 이 곳이 이 넓고 넓은 땅덩어리의 한쪽 끝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그런데 포항의 호미곶도 따지고 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 끝이다. 그곳에서는 태평양을 만난다. 그런데 왜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절벽 가까이에 거친 돌로 쌓아 올린 기둥 위에 돌 십자가가 올려져 있다. 여기 이곳에서 저 먼 바다를 건너는 이들에게 신의 가호라도 내리는 것일까. 이 십자가의 힘에 의지하며 거친 폭풍우와 풍랑을 이겨낸 이들도 있으리라. 무탈하게 돌아 온 이들은 이 돌기둥 앞에 서서 감사의 기도를 올렸으리라 . 돌기둥에 박힌 하얀 표지석에는 포르투갈어로 ‘유럽대륙의 서쪽 끝(POnTA MAiS OCiDenTAl DO COnTineTe eUrOPeU)’이라는 글과 위도(38도 47분), 경도(9도 30분) 그리고 고도(140m)가 표시되어 있다.
여기가 바로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이니 바다 건너가 아메리카 대륙이다. 여기서 미국의 해안까지는 5000km, 비행기로 대여섯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단 한 번도 건너보지 못한 대서양. 그 한쪽 끝에 서서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마음이 덜걱거린다. 언젠가 한 번은 이 바다를 건너보리라.
등대 옆 작은 카페에서 커피와 에그타르트로 허기를 달랬다. 유명한 관광지이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값이 비쌀 만도 한데 그렇지도 않다. 찬 바람을 많이 맞아서인지 커피 맛이 더 진하고 향기롭다. 버스를 기다리며 군밤 한 봉지를 샀다. 생밤은 한국 거랑 비슷한데, 밤을 구울때 소금은 같이 넣어 맛이 다르다. 군밤이 달면서도 살짝 짜다.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서 군밤이라니...
작은 해변을 가진 작은 도시, 카스카이스(Cascais)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여기서 신트라로 되돌아가는 길이 있고, 남쪽 해안 도시인 카스카이스(Cascais)로 가는 방법이 있다. 같은 번호인 403번 버스 노선이 두 개다. 신트라로 되돌아가지 않고 카스카이스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신트라로 가는 것보다는 길이 좋다. 30분이 채 못되어 카스카이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도시가 작아 버스 터미널 바로 맞은편에 역이 있다. 터미널에서 역을 지나 해변가로 가는 길이 예쁘다. 작은 기념품 가게, 카페, 길거리 버스킹, 침대보를 파는 아프리카 여자들도 이국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 준다. 골목길을 벗어나자 파란 하늘과 바다, 하얀 모래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선창가에는 작은 배들이 돛을 접은 채 정박해 있다. 그림같이 작고 예쁜 해변이다.
카스카이스 역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기차는 20분마다 출발한다. 매시 04분, 24분, 44분 출발. 그러고 보니 출발 시각이 특이하다. 리스본에서 신트라로 가는 기차는 09:01, 10:01이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까?
기차는 완행열차인지 자주 멈춰 선다. 축구부 아이들이 시합을 하고 가는지 유니폼을 입은 채로 몰려 타고서는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잠에서 깨어 눈을 뜨니 아직 몇 정거장이 더 남았다.
또 비가 내린다. 빗줄기가 굵다. 가다가 벨렘(Belem) 역에 내려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갈려고 했는데, 우산이 없어 아무래도 시내로 바로 가야 할 듯하다.
종착역인 산토(Santo) 역에 내렸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멈춘다. 간단한 음식과 맥주라도 한 잔 할 생각에 역 건너편에 있는 TimeOut Market에 갔다.
‘와우~ 웬 사람이 이렇게 많아?’ 시끌벅적, 왁자지껄, 와글와글이다. 어디에서 이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햄버거, 피자, 해산물 요리, 포도주, 맥주 등 음식점들이 큰 건물의 벽 쪽에 나란히 들어서 있고, 가운데 공간에는 음식을 먹는 테이블이 있다.
원하는 메뉴를 주문해서 들고 와서는 아무 곳이나 앉아 맛있게 먹으면 된다. 두 바퀴를 돌았는데도 빈자리를 찾지 못했다. 여행 중에는 항상 배가 고프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모양이다.
역 앞에서 713번 버스를 타고 호시오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잠시 쉬었다 야경을 보러 나가기로 했는데, 새벽까지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꿈속에서 야경을 보았던가?
[여행 Tip]
1. 신트라, 까보 다 로까로 갈려면 VIVA 카드를 구입해서 다니면 된다. 시내에서도 버스, 트램을 탈 경우에는 Risboa 카드를 구입해서 타는 게 저렴하다.
2. 까보 다 로까에서 일몰을 보는 게 좋다고 하나, 날씨에 따라 사정이 달라질 수 있으니 신트라 관광 등 일정을 잘 짜는 게 중요하다.
3. 여러 사람이 함께 가는 여행이라면 타임아웃마켓에서 맥주나 포도주 한 잔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