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의 "태국 이야기"(30) 태국도 매일 開闢 하는 미디어 세상

한국의 언론사들은 90년대 초반부터 기자들에게 노트북을 지급했다.

 

모뎀을 통해 연결하는 방식이었지만 기사 송고와 신문 제작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인터넷의 활용도가 높아진 90년대 말쯤부터는 신문을 오려 붙이는 스크랩이 거의 사라졌다. 검색 한방이 모든 것을 완벽히 해결해 줬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발달과 유저들의 증가(네티즌의 등장)는 취재 환경에도 혁명을 가져왔다. 유명 사이트나 게시판을 반드시 챙겨야 하는 ‘인터넷 당번 기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서 제기된 실마리 사연들이 엄청난 사건이 되어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당연히 인터넷 정보를 토대로 쓴 기사가 많다. 노트북의 등장과 인터넷 혁명으로의 과정은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한때 20여 매체의 일간지가 주도하던 과독점 정보와 속보는 다수의 인터넷 유저들과 공유하는 시대가 열렸던 것이었다.

 

2020년을 앞둔 지금은 1인 미디어 시대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버 등을 통해 ‘또 다른 예측불허의 혁명’이 몰아치고 있다. 남북미 정상회동같은 세계적 이슈가 미국 대통령이 직접 트윗을 통해 가장 처음 알리고, 중요 인사들이 은밀히 몇 번은 오가야 겨우 조절되는 회신이 몇 시간만에 바로 나오는 시대다. 유튜버 등은 이른바 인플루언서로 불리며 연예인보다 더 높은 인기와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수많은 유명인들조차 속속 1인 방송에 뛰어든다.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잡고 인기를 이어가려는 ‘생존’의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가 온라인 게시판의 ‘국민청원’을 마련한 과감한 조치가 어느새 당연한 일로도 여겨진다.

 

태국도 다르지 않다. 인구는 7천만 명인데 9천200만 대의 휴대폰이 등록돼 있다. 이 가운데 5천5천만 명은 휴대폰을 통한 인터넷을 사용한다. 또 5천1백만 명은 소셜미디어 정규 유저다. 얼마 전 태국의 영문 일간지 더 네이션은 48년이나 이어온 인쇄를 중단해 충격을 줬다. 디지털환경으로의 적응을 위한 어쩔 수 없고, 필연적인 운명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기자가 아닌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 SnS를 통해 누구나 기존 언론이 했던 기능을 수행한다. 타당한 사정에 사실이 입증되면 장삼이사(張三李四)의 한마디라 할지라도 점점 거대해진다. 언론들은 이런 1인 미디어를 베끼기 바쁘다시피 해 허덕이기까지 하는 ‘슈퍼을(乙)’ 신세가 될 판이다. 주력 언론의 관계자들마저도 사석에선 이젠 빵부터 챙겨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처량하다.

 

SnS 속성은 통제 불가능, 예측 불허다. 비평이라지만 비난의 칼이 되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을 지옥문 앞으로 닦아세우기도 한다. 유용성과 함께 공공의 폭력이란 이중성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연예인들도 카톡 단체방에서 나눈 이야기로 줄줄이 쇠고랑 차고 있는 것만 봐도 그런 것 같다.

 

중요성이 높아지면 악용에 대한 처벌도 엄중해져야 하는 게 마땅한 이치다. 더욱이 오늘의 SnS 환경은 어제와도 사뭇 다르다. 음해는 대부분측근이 한다지만 정보의 숲속에서 은폐하기는 더 쉬어졌으며 진위를 가리기는 더 어렵게 됐고, 무시하기는 한층 곤란하게 됐다. 이로 인한 개인적 사회적 피해는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심각하다. 그러니 실명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익명의 악플러나 음해 무고자에게 ‘살인죄’에 버금가는 법정 최고형이 내렸다는 기사, 아니 SnS가 빈번히 올라올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은 것 같다.

 

태국에선 최근 시골 노점에서 태국인 아내를 도와 음식을 팔던 독일인이 미담의 주인공의 모습으로 확산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태국에 숨어사는 범죄자로 바뀌었다. 빛의 속도로 확산된 SnS 때문이었다.

 

고도화된 SnS 혁명은 신의 영역인 ‘진실’마저도 빠르게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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