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 구엘공원 무료존-까사 밀라-비니투스(점심)-사그리다 파밀리아
자연을 닮은 상상, 구엘공원
구엘공원에 무료입장(오전 8시 이전)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 서둘렀으나 결국 늦었다. 어차피 늦었으니 아침이라도 먹고 버스를 타자 싶어 길가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버스 정류장 근처 카페인데 사람이 많이 몰려 있다. 이런 곳은 언제나 후회 없는 선택이다. 에스프레소(1.2유로)와 바게트 빵에 샐러드 소스를 넣은 파타테스(3.35유로)로 아침 기운을 차렸다.
구엘공원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바로 유료존으로 향하는 그룹도 있고, 무료존을 구경하고 바삐 유료존으로 가는 그룹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유료존이 따로 생겼다고 한다. 무료존은 소박하다. 거기 원래부터 있던 나무와 돌들. 상상력이 풍부한 한 인간에 의해 자연은 또 다른 모습의 자연으로 태어나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반면에 유료존은 색색의 타일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무료존은 산책로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편에 어제 가 본, 카탈로니아 미술관과 몬주익 성이 보인다. 내일 다시 아침 일찍 오기로 하고, 언덕 위에서 내려와 유료존 바깥을 돌아 나왔다.
바람이 만든 옥상, 까사 밀라
까사 밀라를 향해 걸었다. 10:30에 입장하는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가야 한다. 입장권을 미리 사 두지 않으면 길게 줄을 서야하니 인터넷으로 구매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사실 이건 없어도 된다. 그냥 보고 느끼기에도 정신이 없을 정도니까. 건물 한가운데 로비에 서서 위를 쳐다보면 그동안 내가 봐 왔던,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어쩌면 감옥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젠장, 비싸기는 또 얼마나 비싼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옥상을 만나게 된다. 저것들이 도대체 무엇인가? 물, 바람, 나무... 재료는 콘크리트지만 기존에 알던 콘크리트가 아니라 바람에 휘어지고 햇볕을 받고 자라는 생물들이 꿈틀거린다. 관광객들은 그 생물들을 만지고 쓰다듬고 손으로 교감한다. 그러고 보면 바르셀로나의 건물은 비슷비슷하면서도 같은 건물이 하나도 없다. 바로 옆 건물과 높이는 비슷하지만 창문의 모양과 색깔, 테라스의 디자인이 다 제각각이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제각각 이듯이. 건물을 이렇게 짓겠다는 사람과 그것은 지지한 사람, 그들 모두의 마음이 여기 이렇게 세상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층계를 걸어 내려오면, 까사 밀라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100년 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숨결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까사 바요트는 입장을 하지 않고 바깥에서 눈요기만 하려고 했는데 공사 중이라 바깥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까사 밀라와 어떻게 다른지볼 수 없어 아쉬웠다.
아침은 바게트로 부실했으니 점심은 좀 후하게 먹자. 네이버에 맛집으로 올라와 있는 까사 바요트 뒷골목에 있는 비니투스(vInITuS)를 찾아갔다. 네이버 맛집이라 그런지 이역만리 바르셀로나 뒷골목의 식당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죄다 한국 사람이다. 외국식당에서 한국 사람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사이에 앉으려니 오히려 어색했다. 한국이나 외국에서나 맛집 순례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소심한 선택인가. 맛집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꿀 대구 요리인 바칼라오(Bacalao, 10.95유로)와 작은 소고기 스테이크인 솔로밀로 턴(Solomillo Tern, 4.6유로), 오징어 튀김(Calamarcitos Malaguena, 7.2유로)을 주문했다. 음식들은 모두 맛있었다. 곁들여 주문한 맥주 맛도 일품이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많아 왠지 좀 멋쩍었다. 외국 여행 중에는 네이버 맛집은 다시는 안 찾아가야겠다.
상상하기 어려운 상상, 사그리다 파밀리아
배도 부르고, 취기도 약간 오르고, 오늘 계획했던 현대미술관은 패스했다.
바르셀로나에 온 진정한 목적인 사그리다 파밀리아에 집중하기로 했다.
오후 4:30에 입장 예약(일반표가 1인당 25유로)을 해 두었는데, 도착하니 두 시다. 성당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가슴이 띈다.‘ 드디어 내가 이곳에 왔구나’. 건널목을 건너 가까이 다가갔다. 가로수 사이를 지나자 건물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비스듬히 세워진 기둥 위에 최근에 만든 듯한 밝은 회색 구조물이 십자가를 떠받치고 있다. 그 뒤로 옥수수 모양이 종탑 네 개가 하늘로 쏟아있다. 그 종탑들 끝에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기둥 사이사이 공간에는 성서의 에피소드가 묘사되어 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성당이라기보다는 판타지 놀이동산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하다.
건물을 따라 쭉 돌아보니 먼저 본 곳은 정문의 반대쪽이다. 정문 쪽은 건물의 색이 더 짙다. 세월의 흔적을 온전히 몸에 새기고 있다. 성당의 설계자인 안토니 가우디(Antoni Placid gaudi i Cornet, 1852~1926)가 살아 있을 때 먼저 만든 곳이다. 천천히 걸으며 교회 성당의 사면을 둘러봤다. 어디를 봐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짓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런 설계도가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니, 그런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예약한 입장 시간이 되려면 아직 여유가 있어서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다. 엊그제 써 놓은 ‘방콕에서의 운전’에 관한 이야기도 고치고, 바르셀로나 1일 차 여행기도 손 봤다. 한참을 앉아 있었더니 쌀쌀하다. 4월의 바르셀로나는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한국의 날씨와 거의 같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제법 두텁다. 네 시가 되기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정문 쪽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붐볐다. 길 건너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 반대쪽에 가서 성당을 보니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 찍는 포인트다.
정해진 예약 시간 조금 전에 입장했다. 검문검색이 공항 수준이다. 세계의 온갖 나라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종교, 인종, 사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사고에 철저히 대비하는 모양이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마침내 입장했다. 먼저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하는 곳에서 한국말 서비스 단말기를 받고 안내에 따라 설명을 들으면서 다녔다.
성당 바깥의 모습도 놀랍지만 성당 내부에 들어오니 충격이 더하다. 올려다보는 내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성당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저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다. 무슨 말로, 무슨 글로 표현할 수 있으랴. 제각각 제 나라 말로 자아내는 탄성은 다르지만, 모두가 느끼는 바는 다르지 않다. 30미터 이상 높이 솟은 기둥과 천장, 화려한 스테인드 그라스, 곡선과 직선,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성당 내부를 휘감는다. 한동안 치켜든 고개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
한 사람의 위대한 상상력, 상상하기 어려운 상상이 세상 사람들을 이곳으로 끊임없이 끌어당기고 있다. 신을 모시고자 만든 곳이지만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의 상상력이다. 1883년 가우디가 주임 건축가가 된 이후, 그의 설계에 따라 지금까지 여전히 건축되고 있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 앞으로 7년 후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 다시 와야겠다.
[여행 Tip]
1. 구엘공원의 시내 외곽의 언덕에 있어 걸어가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다. 버스를 이용하면 쉽게 갈 수 있다.
2. 구엘공원의 무료존과 유로존으로 구분되는데 유로존에 무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전 8시 이전에 유로존에 있어야 한다.
3. 까사밀라와 사그리다 파밀리아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입장권을 구입하는 것이 줄을 서지 않고 쉽게 입장하는 방법이다.
4. 사그리다 파밀리아 정문 건너편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그 뒤쪽이 성당 전체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