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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피플 | DailyPeople

남들 다 가는 스페인, 포르투갈<3> 가우디의 소꿉장난, 피카소의 유년 시절

-구엘공원(유료존)-피카소 미술관-레이알 광장-라 보케리아 시장

 

어린아이의 마음, 구엘공원
오늘 3일간의 바르셀로나 일정을 마치고 마드리드행 비행기를 탈 것이다. 첫 일정은 어제 관람을 하지 못한 구엘공원 유료존을 관람하기로 했다. 무료입장을 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오전 8시 전에는 유로존 내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잠이 없어지는지 방콕에서 학교 출근하듯이 5시에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6시 반에 호텔에서 체크아웃, 가방만 맡겨두고 버스를 탔다. 아직 새벽의 여명도 오기 전이라 밖은 깜깜하다. 그 어둠 사이로 번져오는 새벽 공기가 이른 아침의 멍한 머리를 깨운다. 버스에서 내려 가로등 불빛을 밟으며 500미터쯤 걸어 올라갔다. 우리가 1등! 어라,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다.

 

구엘공원은 바르셀로나의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구엘(Eusebi Guell)과의 인연으로, 처음엔 주거용 주택단지로 건립되다가 도중에 일반인을 위한 공원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유료존의 특징은 형형색색의 타일로 만든 모자이크화다. 입구 쪽에서 걸어 올라가면 커다란 도마뱀을 만나게 된다. 낮에는 사람이 많아 사진을 찍으려면 한참이나 대기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른 아침이라 그럴 필요가 없어 좋다. 바로 뒤에는 커다란 물고기 입 모양을 한 벤치가 있다. 기둥 옆을 돌아 올라가면 넓은 공간이 나온다. 공간의 테두리 부분이 온통 타일모자이크로 되어 있다. 어느 한 곳 직선인 곳이 없다. 구부러지다가 다시 반대로 돌고 부드럽게 다시 이어진다. 동화 속의 장면 같기도 하고, 놀이동산에 온 것 같기도 하다. 어린아이의 소꿉장난 같은 마음이 언덕위에 펼쳐져 있다. 원래 만들려고 했던 주거용 주택에 사람이 살았다면, 아마도 그들은 모두 어린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모자이크 벤치에 앉아 동쪽을 향해 카메라를 고정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해 뜨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오늘은 아마도 일출은 보기 힘들 거다. 새해 해돋이를 여러 번 가 본 경험으로 봐서 오늘 일출장면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저 멀리 바다 위로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한나절이 되어야 해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일찌감치 포기하고 일찍 내려가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미지의 기다림도 여행의 맛 중의 하나이지 않나 싶어 그만 두었다. 여유 있게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내려왔다. 유료존은 입장료가 12유로니까 버스비 빼고 둘이서 20유로는 아꼈다.

 

 

위대한 화가의 유년 시절, 피카소 미술관
동문 쪽으로 나와 19번 버스를 타고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다. 아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피카소 미술관 근처는 슬럼가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아침 먹을 카페도 찾기 힘들 거라는데, 버스에서 내려 보니 좀 한적하다. 지도를 보며 골목길을 따라 들어갔다. 가게 문을 열고 손님 맞이를 하는 상인, 부지런히 어딘가로 가는 사람, 길거리를 청소하는 청소부, 세상 어디에든 아침을 맞이하는 모습은 같다. 아침은 사람을 깨우고 움직이게 하고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어디에 살던 사람살이가 그리 다르지 않으니 그런가보다.

 

다행히 괜찮은 카페(Boheme)를 발견하고 자리를 잡았다. 크루아상에 햄과 치즈를 넣은 크루아상 이베리코(Croissant Iberico, 2.5유로)와 발효 소고기 슬라이스(하몽)를 넣은 싸파테라 이베리코(Xapatera Iberico, 3유로), 커피, 오렌지 주스로 느긋하게 아침을 즐겼다. 오렌지를 그대로 갈아 내리는 프레쉬 오렌지 주스, 커피, 크루아상은 바르셀로나 어느 카페를 가도 싸고 맛이 좋다.

 

좁은 골목길을 돌자 저만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미술관이 있을 성싶지 않은 골목에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내부로 들어가니 밖에서 생각했던 것보다는 안은 상당히 넓다. 13~15세기에는 귀족의 저택이었으나, 1963년에 피카소 미술관이 이곳에 들어섰다고 한다. 이 미술관에서는 피카소의 성장기 시절의 습작을 감상할 수 있다. 크고 작은 그림이 벽면을 가득 메운다. 흔히들 피카소라고 하면 떠올리는 작품이 ‘아비뇽의 처녀들(1907작,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이다. 이 작품은 그의 수많은 작품 중의 하나이지만, 입체파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피카소 미술관에 있는 작품은 입체파와는 거리가 먼 그의 초기작이 대부분이라 우리에게 친숙한 피카소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피카소는 누구보다도 위대한 화가이지만, 폴 세잔이 엑상 프로방스에서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렇게 열심히 그리지 않았다면 그 역시도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위대한 거인이 되는 건, 언제나 앞선 거인의 어깨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벨라스케즈의 작품 ‘시녀들(Las Meninas)’을 응용한 연작을 비롯하여, 마드리드 미술대전에서 호평을 받은 ‘과학과 자비’ 같은 작품이 눈에 익었다. 기념품 샵에서 ‘모자를 쓴 여인’과 ‘시녀들’ 작은 그림 두 장을 샀다. 이런 그림을 거실 벽에 걸어두고 가끔씩 쳐다보면 삶이 때때로 참 우아해진다. 작은 그림이 주는 큰 행복이다. 미술관을 나와 골목길을 따라 바르셀로나 시청사, 가우디가 딸랑 두 개의 가로등만 만들어 세웠다는 레이알 광장을 거쳐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라 보케리아시장’으로 갔다. 쉬엄쉬엄 걸어가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다.

 

떠들썩한 재미, 라 보케리아 시장이 시장은 네이버에서만 유명한 게 아닌 모양이다. 만국의 사람으로 시장 안이 바글거린다. 생김생김이 다른 여행객만큼이나 다양한 과일, 생선, 하몽, 과자, 초콜릿, 채소가 화려한 조명 아래에 진열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몽 조각 한 봉지를 사서 질겅질겅 씹으며 시장 안을 기웃기웃 돌아다녔다. 5일장 같은 우리의 전통시장 같은 구수한 맛은 아니지만, 유럽의 대도시 한가운데에서 만나는 시장은 떠들썩한 재미가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저녁 비행기로 마드리드로 이동했다. 이동하기 전, 바르셀로나 람브로스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잠시 쇼핑몰에 들렀다. 30-40분 사이에 휴대폰이 없어졌다. 50유로짜리 인조가죽점퍼 하나 사려다가. 귀신같은 놈들이다. 조심한다 조심한다 했는데도 도리 없다. 3년 할부 이제 한 달 남은 한국에서 가져온 폰인데, 당분간 불편하게 생겼다.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는 이베리아 항공을 이용했다. 공항에서 가방을 부치려니 돈을 내야 한다고 한다. 큰 가방 하나에 45유로. 가방이 두 개였는데, 카드를 여러 번 긁다가 잘 안되는지 1개 값만 받는다고 생색을 여러 번 낸다. 그라시아스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이폰 잃어버려서 화가 나 죽겠는데, 45유로가 대수냐~’ 공항에 앉아 아이패드로 휴대폰 분실신고도 하고, 임대폰 신청도 했다.

 

잃어버리고 보니 금융, 친구, 가족 등 사생활의 모든 것이 그 속에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더 걱정 된다. 검찰도 이재명의 아이폰을 열지 못했다는 제 놈들이 무슨 수로... 애플을 믿을 수밖에.

 

 

밤이 짧은, 마드리드
피곤했던 모양이다. 잠깐 졸고 나니 마드리드 공항에 가까워졌는지 비행기가 낮게 날았다. 창밖을 보니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훤하다. 위도가 높아서 그런 건가? 마드리드는 버스보다는 지하철과 전철이 잘 발달하여 있다. 공항 내에서 교통카드를 사고 몇 번을 물어물어 지하철을 탔다. 최종 목적지인 솔(Sol) 역까지 가는데 세 번을 갈아탔다. 환승 구간도 서울메트로처럼 상당히 길다. 가방을 끌고 다니기가 힘들다. 이렇게 대중교통이 발달해 있는 곳은 숙소를 공항 가까이에 잡는 게 좋다. 공항과 숙소로 왔다 갔다 하기에 좋고, 시내보다 숙박비도 비교적 저렴하다.

 

솔(Sol) 역에 내렸더니 밖이 떠들썩하다. 젊은 친구들이 댄스 배틀을 하는데 구경꾼이 빙 둘러서서 손뼉 치며 야단이다. 우리도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어 구경할 여유가 없었다. 빨리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가방을 끌고 숙소인 마카레나(Hostal La Macarena, 2박에 153유로)로 곧장 갔다.

 

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인데, 가는 길가에 카페와 상점이 아주 많다. 인터넷 사진에서는 호텔의 모습이 제법 근사했는데, 역시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방이 아주 작고 소박하다. 샤워실은 몸을 이리저리 돌리기도 힘들 정도다. 그래도 1층에 레스토랑이 있고 주위에 카페와 바가 많아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기에는 제격이다. 가방만 방에 두고 내려와 1층 카페에서 맥주와 스페인 감자 오믈렛인 또띠야로 늦은 만찬을 즐겼다. 마드리드에서의 짧은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여행 Tip]
1. 구엘공원 유로존은 일출 전에 가면 입장료도 아끼고 날씨에 따라 멋진 해 뜨는 장면도 볼 수 있다.
2. 피카소 미술관 입장권은 인터넷 예매를 하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현장 발매 12유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있음)
3. 쇼핑몰에서는 특히 소매치기 조심! 옷을 입어보고 벗고 하는 사이에 가방과 지갑을 노린다.
4. 인터넷에서 항공권을 구매할 때 수화물에 따른 추가 비용이 드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