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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피플 | DailyPeople

남들 다 가는 스페인, 포르투갈<4> 볕이 강할수록 그늘도 짙다

- 노숙자, 소매치기 그리고 불친절

1. 소매치기
스페인 여행을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여행 후기에서 꼭 주의하라고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소매치기’ 조심이다. 얼마 전, 큰 화재로 국제적인 뉴스가 된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 갔을 때도 낯선 외국인이 나에게 가방을 앞으로 메는 게 안전하다고 주의를 줬었다. 파리에 갔을 때는 유럽여행이 처음도 아니어서 나름 주의한다고 했는데도 다른 여행객이 보기에는 어설퍼 보였나 보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기나 맛집 밖에서 기다리면 어김없이 듣는 말이 가방을 앞으로 하라는 말이다.

가방을 뒤로 맨 채로 카페에서 줄을 서 있거나, 기차를 타기 위해 서 있으면 뒤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를 가던 여행객의 눈치를 살피면서 빈틈을 보는 이들이 있다. 소매치기들이다. 한 번은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람블라스(Ramblas)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 때다. 좀 오래 앉아 있을 요량으로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차를 마시며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가까운 테이블에 허름한 차림의 사람이 들어와 앉았는데 커피를 마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주문을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을 유심히 쳐다볼 뿐이다. 나가려다가 다시 앉고, 줄 선 사람들 옆으로 갔다가 다시 오기를 반복한다. 행색도 그렇고 냄새도 나고, 하는 행동이 이상하니 나뿐만이 아니라 카페 안의 사람들이 하나둘 그 사람을 쳐다본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이나 그러더니 그냥 밖으로 나가 버린다.

스스로 소매치기라고 표시를 내고 다니는 걸 보니, 전문적인 솜씨를 가진 진짜 선수는 아닌 듯하다. 돈이 궁해 어설프게 소매치기를 한 번 해보려고 하다가 여의치가 않아서 그만둔 모양이다. 그 친구는 오히려 운이 좋았다. 실행을 안 해서 다행이지 만약 실제 행동을 취했다면 여러사람에게 제압을 당했을 게 뻔했다. 그렇게 어설프게 소매치기라고 표시를 내는 사람도 있지만 진짜 선수들은 우리가 알 도리가 없다. 스페인에서 가까운 아프리카에서 불법으로 입국한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은 피부색 때문에 훨씬 불리한 입장에 있으니까 그런 일을 하기에는 더 어려울 것이다. 카페에서 본 그 사람도 피부색이 밝았다. 관광객이 무조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조심을 했는데도, 언제 내 휴대폰을 가져가 버렸는지 모르겠다. 그 카페에서 나와서 1시간도 지나지 않아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했으니, 역시 솜씨 좋은 선수들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2. 노숙자
스페인에는 노숙자 천지다. 가난은 나라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말처럼 스페인 나라님도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서울역이나 지하철 통로 등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정도인데,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에는 그런 사람들이 관광지 어디를 가도 있다. 지하철, 기차역, 카페, 길거리 상점에도 있다. 지갑이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면 그것이 원래 자기 돈인데, 내가 쓰고 있다는 듯이 쳐다본다. 얼마나 열심히 쳐다보는지 내 돈을 내가 쓰는데도 미안할 정도다. 갑자기 달려들어 가져가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깡통 하나를 앞에 놓고 길거리에 앉아 동냥을 하는 사람은 그래도 양반이다. 카페에 앉아 있을 때나 줄을 서있을 때 옆에 와서는 돈을 달라고 구걸하는 사람도 있다. 간혹 귀여운 강아지를 데리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이들도 있는데, 좀 얄밉다. 노숙자도 딱히 어디 쪽 사람이구나 하고 정해진 것이 없다.

유럽 사람같이 생긴 이도 있고, 남미 쪽에서 건너온 듯한 이도 있다. 아프리카 쪽에서 온 듯한 사람들은 오히려 뭔가를 팔면서 자립을 하려고 하지 구걸하는 모습은 보질 못했다. 바르셀로나의 스페인 광장 근처와카탈루니아 광장을 올라가는 길목에서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는 이들도 대부분 그들이다. 비 오는 마요르 광장에서 나에게 팔찌를 팔던 그 친구도 세네갈에서 왔다고 했다. 리스본의 로시오 광장에서 성 조르주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도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 괜스레 으스스했지만, 구걸하는 사람은 보질 못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도 살아가는 모습을 제각각이다.

국적은 알 수 없지만 노숙자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독특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낮에는 덥고 밤에는 기온이 많이 내려가 추운 곳이다. 노숙자 입장에서는 더운 한낮에도 옷을 두텁게 입고 다니며 추운 밤을 대비해야 할 수밖에 없다. 거처가 마땅치 않으니 옷을 보관해 두고 다닐 수도 없지 않겠나. 그러니 한낮의 땀과 고단함이 옷 속에 배여 냄새가 난다. 그 냄새는 추운 밤을 겨우 버티어낸 힘겨움이기도 하다. 내게는 단지 잠시 참기 힘든 거북한 냄새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는 무기력한 일상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체취에 둔감해지듯 삶의 힘겨움에도 둔감해지는 삶이 어떨지 생각했다.


3. 불친절
스페인 사람들은 좀처럼 웃지 않는다. 친절하게 말하는 법이 없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할 때도 아주 사무적으로 말한다. 스페인 사람들의 그런모습을 보면, 자격지심인지 모르지만 동양인들을 무시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같은 동양인은 여행을 온 사람이라는, 그곳이 낯선 곳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표를 잘못 낼 수도 있고, 동전 계산을 잘못할 수도 있음을 알 텐데도 친절히 설명해 주는 법이 없다.

질문“, 혹시 여기서 충전기 충전을 좀 할 수 있나요?”
예상 답변“, 미안하지만 여기서는 충전할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실제 답변“, 노~”
질문,“ 신트라행 기차표 주세요. 거기서 다시 까보 다 로까까지 갈 예정입니다.”
예상 답변“, 아, 그러시면 비바 카드를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 답변“, (퉁명스럽게) 다음부터는 기차와 버스를 탄다고 말하세요.”

일주일 이상을 유럽에 머물면서 길을 물었을 때 웃으면서 대답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여행객이 낯선 만큼 그들도 여행객이 낯설기는 마찬가지라서 그런가 이해를 해 보려고 하다가도 기분이 좋지 않은건 어쩔 수 없다.

스페인, 그들은 중세 미술의 보고라고 할 정도로 엄청한 예술품을 소장한 카탈루니아 미술관을 가졌다. 파블로 피카소, 프란시스코 고야, 살바도르 달리, 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스, 호안 미로 등 이름 하나하나가 그 시대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고국이기도 하다. 구엘 공원, 까사 밀라, 사그리다 파밀리아 등 연간 수백 수천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독창적인 건축물도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도 가서 직접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짙은 그늘이 있다. 엄청난 빛과 화려함 뒤에 숨은 어둠과 슬픔, 그리고 빛 앞에 자신을 당당히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아픔이 있다. 진정한 여행은 햇볕의 찬란함뿐만 아니라 짙은 그늘도 함께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