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군 모병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국처럼 징병제를 유지해 온 태국에서 모병제 전환법이 국회에 제출돼 주목되고 있다.
진보당인 태국 퓨처포워드당(Future Forward Party)은 전시를 제외하곤 현재의 징병제를 모병제(지원병제)로 전환하고 지원병의 인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법안을 11월 11일 추안 릭파이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모병제는 퓨처포워드 당의 지난 3월 실시된 총선에서 주요 선거공약이기도 했다. 이 당의 퐁사콘 롯촘뿌 의원은 “현재의 징병제는 1954년 제정된 것으로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병제로 바뀌면 군인 수는 줄어들지만 집중 훈련을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병력을 보유할 수 있다는 주장. 제출된 법안에 따르면 지원자격은 18세에서 40세, 군사훈련 기간은 현재의 2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지원병은 46세에 전역하며, 최고 중령까지 진급할 수 있다. 병영에서 인권유린을 방지하고 병사들이 사적인 용도로 사용되지 못하는 것도 법안에 포함됐다.
태국은 징집 병력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13년 9만 4천480명이 징집되었으나 지난해는 10만 4천734명이었다. 태국 징집병의 급여는 약 1만 바트(한화 약 40만 원)로, 태국에 비해 훨씬 적었으나 그동안 꾸준히 인상되어온 한국군의 병장 월급(40만 6천 원, 2019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퓨처포워드당의 모병제 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 육군 참모총장 출신으로 쿠데타로 집권한 뒤 올해 국민 총선을 통해 총리가 된 쁘라윳 총리는 학교 훈련을 하면 합법적으로 군 면제를 받는 ‘러도’에 대해서도반대해 왔다.
태국은 우리나라처럼 징병제를 근간으로 군을 운영하고 있지만 입대방식이 사뭇 달라 종종 해외토픽감이 되기도 한다. 입영 대상자는 무작위 추첨을 통해 결정된다. 추첨에서 붉은색 카드를 뽑으면 군에 가야하지만 검은색 카드를 뽑으면 군 복무가 면제된다. 한해 필요한 군인의 숫자는 8만~10만 명인데 그 만큼만 뽑는 것이다. 태국 남성들은 21세 이전에 예외 없이 징병검사를 받게 되어 있다. 보통 매년 4월 이전에 실시하는데 학교나 사원 같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검사장에서 빨간색 또는 검은색 카드를 선택할 수 있다. 빨간색을 뽑으면 군에 가야 하고, 검은색은 면제다. 위 사진은 검은색을 뽑아 면제를 받은 남성이 로또에 당첨된 듯 일갈 환호성을 내지르는 모습이다.
징병대상은 21세에서 30세의 남성에 한한다. 복무 기간은 2년. 흥미로운 것은 추첨 방식에 따른 복불복(福不福)의 결과를 선택하지 않고 먼저 지원하겠다고 하는 경우다. 이때의 복무 기간은 6개월로 확 단축된다. 태국 젊은이들은 카드를 뽑아 면제의 혜택을 받을 것인가 또는 자원입대해 복무 기간을 줄일 것인가에 대한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태국 군인들은 모두 짧은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깎고 팔굽혀펴기 45회, 윗몸일으키기 50회, 8킬로 구보 등을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기타의 개인적인 사유로 탈영병이 생기기도 한다. 징병이 추첨이다 보니 비리도 제기된다. 어떤 색깔이 나오더라도 뇌물을 주고 병역을 면제받은 경우가 드러나기도 한다.
워낙 트랜스젠더가 많은 나라라 징병검사장에선 이색 광경도 종종 벌어진다. 매년 여성 외모의 대상자들이 웃통을 벗은 남성 사이에 끼어 있다. 한국의 KBS, MBC 등도 이런 광경을 모두 한 번씩은 보도했다.
과거 이들은 정신병자로 분류됐으나 2008년 4월부터는 성 전환자란 명목으로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다만 면제 대상 성 전환자는 징집 대상 일부터 3년간 여성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호르몬 처방, 병원의 수술 증명서 등이다. 몇 년 전엔 성 전환자 선발 대회로 매우 유명한 미스 티파티 대회의 입상자인 콘팟이란 남성이 핑크빛 블라우스 차림으로 징병검사장에 나타나 전국의 화제가 됐다.
당시 담당 판정관은 “가슴이 군 복무에 부적절하다"라며 면제 판정을 내렸다. 당시 이를 보도한 신문들은 콘팟의 성(性)을 어디는 남자, 어디는 여자라고 쓰는 등 도무지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었다. 2PM 멤버 닉쿤도 2009년 4월 태국에서 징병검사에 응해 면제를 받았다. 태국 오빠부대의 “꺅꺅” 소리를 들으며 징병검사장에 나왔는데 그 해엔 이미 군에 가겠다는 지원자가 넘쳐 ‘자동 빵’으로 면제된 행운을 잡았다. 태국은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병사들에겐 참모총장이 직접 전역 증서를전달하며 예우해 주는 전통이 있다.
태국은 한국 같은 남북 대치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캄보디아와의 국경문제, 남부 이슬람 분리주의자들의 테러 등으로 군유지의 필요성이 적극 제기되는 나라다. 유럽의 경우 1990년 대 들어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되었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안보위기감이 커지면서 우크라이나(2014), 리투아니아(2015), 노르웨이(2016), 스웨덴(2018)이 다시 징병제로 환원되었다. 2001년 프랑스도 모병제가 됐지만 징병제 환원을 추진한다고 한다. 한편 대만은 2018년 징병제를 폐지하고 완전 모병제로 전환했다.
우리나라는 징병제와 모병제를 결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2019년 기준 병사는 37만 7천 명, 부사관은 12만 7천 명, 장교는 7만 5천여 명이라고 한다. 한 해 현역 입영자 수는 태국에 비해 3배 정도 많은 30만명 선이다. 전면적 모병제를 실시하면 병력 수가 당장 50만 명 이하로 줄어들며 인건비가 크게 늘어난다는 부담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