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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피플 | DailyPeople

남들 다 가는 스페인, 포르투갈<9> 에그타르트의 전설, 그리고 여행의 끝

 

-제로니무스 수도원-벨렘 에그타르트 빵집-발견기념비-벨렝탑

오늘은 방콕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이다. 늦은 저녁 비행기라 하루의 시간이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주위에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가게가 있고, 발견기념비, 벨렝탑도 가까이에 있어 여유 있는 하루 여행을 하기에 딱 좋다. 아침에는 초겨울 날씨처럼 쌀쌀하다.

 

아침, 저녁과 한낮의 기온차가 꽤 심하다. 낮에는 초여름 같은 날씨라 반팔 차림으로 다녀도 될 정도인데, 아침과 저녁에는 늦가을이라도 된듯 기온이 오르내린다. 좀 귀찮긴 하지만 가벼운 윗옷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이른 아침에 버스를 타려고 호시오 광장 옆 버스정류장에 서있는데, 여기저기에서 부랑자들이 슬금슬금 나타난다. 밤새 추웠을 텐데 어디서 밤을 지새우고 온 것일까?

 

수도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호시우 광장 근처에서 714번 버스틀 타거나 15번 트램(15E라고 표기)을 타고 30분 정도 가면 된다. 한 번 타는데 요금은 2유로다. 티켓 구입을 별도로 하지 않아도 그냥 버스에 타면서 현금을 내어도 가능하다(트램은 기사가 돈을 받지 않으니 티켓이 꼭 필요). 비바 카드 등 교통카드가 있으면 더 편리하다. 도로의 바닥이 작은 돌들로 되어 있어서 울퉁불퉁, 차가 덜컹거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낡았고, 길은 지저분하다. 지난밤을 즐겁게 보낸 여행객들의 흔적이다. 치우지 않은 쓰레기들이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나뒹군다.

 

수도원 바로 옆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 근처에 유명한 스타벅스와 에그타르트 가게가 있다. 이른 아침인데도 길게 줄을 서 있다. 리스본에서는 에그타르트를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하고, 그것도 꼭 이곳 벨렘의 에그타르트 가게에서 먹어 봐야 한다고 온갖 블로그에 적혀 있다. 근처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레시피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수도원의 수녀복에 풀을 먹일 때 달걀의 흰자만을 사용했는데, 남은 노른자를 어떻게 활용할까 궁리하다가 만들게 된 것이 에그타르트라는 것이다. 수도원의 레시피를 전수받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끈다.

 

Pasteis de Belem, 벨렘가의 빵집 정도 될까? Pasteis가 영어로 뭐냐고 직원에게 물었더니 tart cake라고 한다. 벨렘의 에그타르트 집, 5대에 걸쳐 170년이나 된 곳이라니 정말 대단한 곳이긴 하다. 에세이스트이자 요리가인 박찬일이 쓴 <백년식당>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18개의 오래된 식당인 노포들도 고작 50년을 넘은 것들인데, 170년이라니... 어쩌면 관광객들은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아니라 바로 이 에그타르트 집을 성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건물은 늘 그곳에 서 있지만, 맛은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더 힘들 테니까. 커피와 에그타르트를 주문했다. 다른 곳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부드럽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페스츄리 빵에 올려져 있는 적당히 달고 부드러운 크림, 찐한 커피와 딱 어울린다. 몇 개 더 사가고 싶었지만 포장하는 줄은 엄청 길어 포기했다.

 

수도원은 10시부터 입장 가능한데, 벌써 줄이 엄청나게 길다. 20여 분을 서 있었는데, 표는 저쪽 박물관에 가서 사 와야 한다고 뒤늦게 직원이 일러준다. 수도원의 좌측에 있는 박물관에서 표 사는데만 40~50분은 족히 걸린 듯하다. 입장하는 줄에 아내가 서 있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표를 산 후에 입장하는 줄에서도 한참을 기다릴 뻔했다.

 

정문을 지나자 넓은 마당이 나온다. 사방이 모두 긴 회랑으로 되어 있다. 회랑의 기둥과 천장, 2층 난간 등 이 곳은 마누엘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라 한다. 화려하고 부드러운 문양을 기둥과 벽면에 빈틈없이 채워 놓았다. 2층에 올라가니 수도원 제단이 아래층 정면으로 보인다. 이런 곳에 오면 가만히 있고 싶어진다. 믿음이 없는 나조차 성스러운 분위기에 자신을 그냥 놓아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신을 섬기러 이곳에 들어왔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땠을까. 수도원이나 성당 등 건물은 단지 건축물로서가 아니라 그 속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밖은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화창한 봄 햇살을 되찾았다. 수도원 앞 넓은 마당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선글라스와 목걸이 기념품을 파는 잡상인들의 목소리로 부산하다. 길 건너편에 분수와 큰 탑이 보이는데 그것이 1960년에 준공된 대항해 시대를 기념하는 발견기념비라고 한다. 이 기념비에 포르투갈 사람들은 몇 백 년 전의 그때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한참을 올려다 보아야 할 정도로 높이 솟은 회색 기둥 옆으로 실물보다 훨씬 큰 사람들을 조각해 놓았다. 포르투갈이 영광을 누리던 시기에 그 영광의 크기만큼 고난을 겪었던 나라의 후손들도 이 기념비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강가를 따라 걸었다. 10여 분을 걸어가니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성의 일부를 뚝 떼내어 옮겨 놓은 듯 한 벨렝탑이 있다. 길을 검색할 필요도 없이 사람들이 걷는 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탑이다. 16세기 엠마누엘 1세에 의해 바스코 다 가마의 세계일주의 위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지금 타구스강을 흐르는 강물도 그 옛날의 물이 아니듯 여기 모인 사람들도 그 시절의 포르투갈의 영화를 알지 못한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사람은 가고 다시 온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시절의 영광도 오랜시간의 뒤편으로 사라져 잊어지고 이렇게 돌로 된 탑만이 그것을 기억하는 것인가. 어쩌면 강물과 사람을 비추는 저 태양도 알고 있으리라.

 

벨랭탑 옆 Cafe do Forte에 앉아 타구스강의 끝이 대서양의 품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마그리타 피자와 맥주를 주문했다.

 

피자가 나온 것을 기다리며 이번 여행의 마지막 후기를 후다닥 적었다.

 

 

 

그동안 <남들 다 가는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기를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행 중간중간 메모하고 적어 놓았던 글을 여행을 다녀온 후에 다시 들여다 보고 매거진에 올리고, 다시 mrkorea에 기고했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여행이 끝나지 않았군요.” 옆에서 한 마디 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출발한 공항으로 다시 들어오면 여행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의 기억과 추억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 때 여행은 끝나는 것이다.’라고.
여행 후기를 쓰는 내내, 다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Tip]
1. 제로니무스 수도원 입장권은 인터넷으로 사전에 구입하는 것이 좋다.(수도원 입장 10유로, 박물관 입장 포함 12유로)
- 현장 구매할 때는 인근에 있는 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2. 에그타르트는 따뜻할 때가 말랑하니 맛있다. 포장으로 사려면 줄이 길다.(개당1.25~1.5유로)
3. 트램은 현금으로 탈 수 없으니 교통카드 반드시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