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관의 방콕단상斷想(10) 수저와 젓가락 대신, 수저와 포크를 쓰는 사람들의 나라 태국에서 배우는 ‘대나무 중립외교(Bamboo Neutral Diplomacy)’

수저와 젓가락 대신, 수저와 포크를 쓰는 사람들의 나라

태국에서 배우는 ‘대나무 중립외교(Bamboo Neutral Diplomacy)’

 

근래의 북핵문제 관련한 중·미·일 삼국의 한반도에 대한 외세개입 상황을 바라보고 있자면, 얼핏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당시의 피맺혔던 통한의 역사와, 척화양이 일변도로 치닫다가 제국주의적 침탈에 국권이 허덕임을 면치 못하던 시절, 그리고 청일전쟁 틈바구니에서 일본에게 국권을 상실했다가 미·소에 의해 국토가 분단되어진 뼈저린 한국현대사가 떠오른다.


한편, 1238년 수코타이 왕조를 세운 이래 지금까지 780년 동안 독립을 지켜 온 태국의 역사를 반추해 보면, 지나친 명분보다는 실리 추구 정신에 근간한 ‘대나무 중립외교 : Bamboo Neutral Diplomacy’ 노선이 두드러진다.


어찌 보면, 삼국시대에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국가들을 통일한다는 명분 아닌 명분으로 당나라를 한반도에 끌어들인 신라의 극단적 정책을 시작으로, 명나라를 섬기는 사대주의자들에 의한 일본의 정명가도(征明假道) 요구에 정면으로 맞선 정책으로 7년간 온 국토가 불바다가 된 임진왜란을 치룬 조선중기의 전란사, 그리고 봉건세력과 주변강대국들의 침탈에 맞서 일어난 동학농민군 봉기를 청나라와 일본 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해결하려 했던 조선후기 전대미문의 동학농민전쟁의 참극 같은 경우를 되새겨 보더라도, 태국의 이런 외교노선과는 다르게 우리는 늘 주변 강대국의 어느 한편에 기울어 명분만을 내세운 승패를 떠난 극단의 싸움을 하자는 ‘척화파’와, 주변정세를 감안한 실리를 따져 균형과 힘의 논리에 견인되는 기교를 살려 백성을 살리기 위한 ‘주화파’의 틈바구니 속에서 번번이 ‘척화파’가 득세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다시말해, 우리나라는 ‘꼿꼿한 낙락장송 소나무가 거센 비바람에 정면으로 맞선 채 뿌러졌다가 어렵사리 척박한 대지에서 다시금 싹을 티워 소나무 숲’을 만들어 왔던 반면에, 태국은 ‘굳건히 독립을 지키다가도 외세가 밀려들면 슬며시 휘어졌다가 어느 사이에 슬그머니 다시 나라를 곧추 세우는 대나무 같은 역사를 지닌 나라’ 라는 말이다.


이러한 태국의 ‘대나무 중립외교’는, 산업혁명을 이룬 서구 열강들이 아시아로 밀려들어 대부분의 동양 각국을 서세동점(西勢東漸)했던 19세기 무렵의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 그리고 20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미국과 소련 이라는 두개의 축으로 대표되었던 동서냉전시대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태국이라는 나라가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이나 영토상실을 입지 않고, 소실대득(小失大得)으로 ‘국토와 국민 그리고 왕조’를 지켜내게 해 온 힘의 원동력 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태국의 처신이 ‘대세에 편승한 유연함과 타협을 보이는 외교술’ 이라는 칭송과 더불어 ‘기회주의적인 명분상실의 대외정치술’ 이라 여겨져 세계 외교사의 도마위에 오르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가와 국민’ 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부여한 근원적 기준을 추구한다는 부분에서 태국은 늘 그들만의 원칙을 고수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태국에서 자주 타이식으로 식사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현상 한가지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서양권은 식사시에 포크와 나이프’를 쓰고,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은 수저와 젓가락’을 사용하는데 반해, 태국에서는 동남아 여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수저와 젓가락’이라는 조합대신 동양의 ’수저’와 서양문화와의 접변에서 차용된 ‘포크’ 라는 변형된 도구를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태국은 유독 각자의 취향에 맞게 테이블에서 직접 조미(調味)하는 ‘크르엉 뿌룽’ 이라는 양념가미 용구를 추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태국은 동남아적 식사의 방편인 수저를 고수는 하되, 서양세력과의 문화 접변 시 포크를 들여와 차용해 자신들의 편리한 소구로 동화시켜 사용하는 것 외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미하는 도구를 별도로 추가해 사용하는 독특한 식사용구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외세에 침탈받아 식민지가 된 전력의 동남아 제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태국의 역사는 이렇듯 ‘두 손에 각각 수저와 포크를 들고 자신들이 스스로 양념해가며 그들만의 밥그릇(국가, 국민, 왕조)’을 지켜내 왔다. 그렇기에, 그들의 손에 쥐여진 수저와 포크는 한편으로는 여타 동남아 국가와 같아 보이지만, 다른 한 측면으로는 명백히 다르다.


그렇기에 태국민들은 오늘도 여타 동남아 국가들과는 다른 정치외교사적 완성도를 이끌어 내며 독립을 굳건히 유지해 온 자신들의 역사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는 것이며, 또한, 이러한 태국의 ‘대나무 중립외교 : Bamboo Neutral Diplomacy’는 현재의 우리나라가 처한 한반도 군사 외교적 상황을 살펴 볼 때, 각별히 눈여겨 살펴 볼 타산지석의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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