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 천국’ 태국 달라질까?
‘비닐봉지 천국’태국에 환경보호가 화두로 떠올랐다.
태국 자연자원 환경부가 전국 154개의 국립공원과 7개 동물원에서 플라스틱과 비닐봉지 사용 금지정책을 곧 추진할 예정이다.
쓰레기 몸살은 전세계의 공통 사안. 특히나 올해부터 중국이 폐자원 수입 금지조치를 실시한 뒤 갈 곳 없는 쓰레기들이 지구곳곳에 떠다니고 있다.
그런 가운데 태국은 최근 들어 쇼킹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며 플라스틱과 비닐봉지 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증대되고 있다.
지난 2월 태국 남부 바다에서 비닐봉지와 스티로폼, 플라스틱 등으로 이뤄진 거대한 쓰레기더미가 발견됐는데, 2개월이 뒤인 지난 4월에는 무려 1km에 이르는 쓰레기 섬이 바다에서 발견돼 큰 충격을 주었다.
그 뿐 아니었다. 지난 5월 28일 태국 남부 말레이시아 접경 해안에선 둥근머리 돌고래(Pilot Whale)가 얕은 바다에 심상치 않은 모양으로 떠 있다 발견됐다. 구조팀은 돌고래 주변에 부표를 띄우고 우산으로 햇볕을 가려주며 분투했지만 돌고래는 5일만인 지난 6월 1일 사망했다. 사망 전엔 크게 몸부림 치며 검은 플라스틱 봉지들을 토해냈다. 태국 해양자원부가 공개한 부검결과에는 검은색 비닐봉지 조각과 흰 플라스틱 뭉치가 나왔다. 비닐봉지 무게만 8kg에 달했다. 이 돌고래의 주식은 오징어다. 오징어가 없으면 오징어 닮은 모양의 낙지나 작은 물고기도 먹는다. 학자들은 햇볕과 바닷물의 염분, 그리고 파도에 의해 잘게 부서진 비닐조각을 돌고래가 먹이로 오인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태국 방콕 까셋삿대학의 해양생물학자 톤 탐롱나와사왓교수는 1년에 300마리 이상의 해양동물이 태국 해역에서 플라스틱을 먹고 죽는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2016년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해변에서 30마리가 넘는 향유고래가 사망했는데 부검결과 뱃속에서 그물과 플라스틱이 발견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올해 2월엔 스페인 남부 해변에서 10m에 이르는 거대한 고래가 쓰레기 29kg을 삼킨 뒤 죽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인은 복막염이었다. 바닷물에 쪼개진 비닐을 먹는 것은 고래 뿐만이 아니다. 바다거북은 넘실대며 떠다니는 비닐을 해파리로 착각하고 먹는다고 한다.
석유에서 추출된 이 저비용 고분자물질인 비닐, 플라스틱은 소화가 안되는 것 뿐만 아니라 유독가스를 만들어 바다 생물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1869년에 발명되었으니 그 역사가 150년 밖엔 안 된다. 가볍고, 만드는 비용도 적게 드니 산업화시대의 생활용품으로 각광받아왔다. 완전히 분해되는 데는 5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어떤 SF 영화에 보면 수 백년이 지나 폐허가 된 지구에도 플라스틱 봉지는 날아다닌다.
한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kg으로 세계 1위 수준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태국에선 1년에 44억 병의 플라스틱 음료통이 나오고 60%가 비닐로 포장된다. 또 1년에 450억 장의 비닐봉투가 사용되는데 쓰레기의 19%만 재활용된다. 태국 오염통제국은 가정용 쓰레기의 80%는 재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분석한다. 태국은 2019년 까지 플라스틱 병을 밀봉하는 비닐 포장을 우선 제거할 방침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1년에 버려지는 쓰레기의 10%를 줄일 수 있다고 전망한다. 또 재활용 비중을 50%까지 높이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다년간 태국에 거주하고 있는 필자의 느낌으로는 마구 버려지는 쓰레기가 초래하는 심각성은 태국이 한국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 원인은 태국에 재활용을 위한 쓰레기 분리수거가 아직까지도 법제화되고 있지 않는데 기인한다.
한국에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릴 수 없다. 버리는 날도 정해져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재활용은 재활용, 음식물은 음식물로 분리해 버려야 하고 쓰레기 봉투는 양식에 맞춰 사야 한다. 비닐봉지를 공짜로 제공하는 상점은 없다.
하지만 태국엔 그런 것들이 일체 없다. 백화점에 가면 크고 작은 비닐봉지에 그것도 종류별로 정성스럽게 담아준다. 가정에선 커다란 검은 봉지에 마구 뒤죽박죽 섞어 쓰레기를 버린다. 일부 공원 같은 곳에 분리통이 설치돼 있기도 하고 의식 있는 업체들과 사람들은 쓰레기 분리, 천 쇼핑가방 쓰기를 일부 자진해 실천하고 있지만 대개는 급한대로 마구 버린다. 직원 또는 매반(가사도우미)에게 분리해서 버리라고 잔소리를 해도 그 때 뿐이다.
한국에 쓰레기 분리제도가 도입된 게 1995년인데, 태국은 그 이전의 모습이라고 상상하면 딱이다. 태국인은 1인당 하루 1.14kg의 쓰레기를 버린다고 한다. 태국에는 쓰레기 소각을 통한 발전소가 쏭클라, 피싸누룩, 푸켓, 방콕 등에 있지만 인구 900만의 대도시인 방콕 하나만 해도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재활용 처리시스템이나 국민의식없이 어떻게 처리할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태국엔 성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들이 세계 1위의 수준인데, 그 원인으로 플라스틱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성 호르몬의 변이를 꼽는 소수설도 있다. 태국 사람들 보면 비닐 봉지 참 많이 이용한다. 영국에선 빨대 전면 금지 정책이 곧 실시될 예정이듯 전세계적으로 빨대기피 현상이 뚜렷하지만 여전히 콜라에 얼음을 잘게 부숴 비닐봉지에 담은 뒤 빨대를 꽃아 들고 다니며 마시기도 한다. 과거 한국의 한 공중파 방송은 이유 없는 고통과 월경불순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집단을 대상으로 집안에서 플라스틱류를 모두 없앤 뒤 완전히 달라진 실험결과를 발표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1분에 100만 개의 플라스틱 병이 팔리고 4천800억개가 사용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해양 에코시스팀의 세계적 피해는 연간 130억 달러에 이른다. 비닐과 플라스틱의 유해성이 심각해 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규제에 나서고 있다.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이어 올해 뉴욕주도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금지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호주에선 올해 7월 1일부터 비닐봉지 사용금지 법안이 발효되고 그 중 퀸즐랜드주는 소매업자가 비닐봉지를 제공하면 최고 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선진국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카메룬, 탄자니아, 우간다, 에티오피아까지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한다고 하니 비닐봉지 150년의 역사의 종말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태국은 30여년간 쌀 수출량 세계 1위의 진기록을 보유하며 ‘세계에서 식량이 가장 풍부한 나라’로 불리는 나라다. 최소한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온다. 반면 풍부한 자연혜택과 함께 산업화로 비닐봉지의 사용이 만연해 그 편리함이 곳곳에 오랫동안 천착한 나라다. 과거 한때 쓰레기 분리를 홍보하는 차량이 도심을 순회하고, 아피락 코사요딘이란 방콕시장은 쓰레기 분리를 적극 실천하려던 정치인이었으나 공염불로 끝나고 말았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태국 바다엔 거대한 쓰레기 섬이 떠다니고, 해변엔 고래와 바다 거북이 비닐 쓰레기를 먹고 죽는 일이 잇따라 벌어지는 있다. 한꺼번에 닥친 징조를 태국 사람들이 가벼이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 다행히 침묵하고 굼뜬 법에 앞서 사회적 사안에 목소리를 내고 실천하는 태국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