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총선 이후 태국에 거는 기대
태국의 가장 큰 화두였던 총선이 지난 3월 24일 치러졌다.
총 500명의 하원을 뽑은 이번 선거는 향후 태국정권의 주인을 결정하는 ‘초대형 이벤트’ 였다. 언제 열리냐를 두고 오래도록 뜸을 들였는데 관전포인트는 무척 간단했다. ‘선거의 명수’ 탁신파의 정권 재탈환 vs 현 집권군부의 정권 연장.
선거 결과는 5월 9일 공식 발표된다. 하지만94%의 개표를 토대로 각 태국 언론에서 분석한 것을 보면 예상과는 다른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간당 간당’하게 여겨졌던 현 군부의 재집권 성공은 한걸음 더 확실해진 반면 탁신파의 정권 탈환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인다.
지역구 의석수 확보에 1등을 차지한 친(親)탁신파가 의석수에선 승리하긴 했지만 정권을 이끌 만큼 ‘압승’하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이라는 게 아이러니컬하다.
종전의 룰이라면 그렇지 않았다. 지역구 투표에 앞선 정당에게 새정부구성의 우선권이 주어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집권군부가 만든 새 헌법은 기존 방식을 크게 바꿔 놓았다.
현 태국정권은 2014년 5월 쿠데타를 선언한 뒤 5년 째 정부를 이끌고 있는 쁘라윳 찬오차 수상이 주도하고 있다. 그가 이번 선거에서 수상후보로 나선 정당이름은 팔랑쁘라차랏(Palang Pracharath).
태국어로 ‘국민의 힘’이란 뜻. 쿠데타 후 장관 등 정부 요직을 맡던 사람들이 당의 주요직을 맡고 있다.
팔랑쁘라차랏 당과 대척점을 이룬 친 탁신당은 푸어타이(PheuThai) 당이다.‘ 태국을 위하여’란 뜻이다. 2006년 쁘라윳 찬오차 총리의 선배 군인들이 몰아낸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정당이다. 탁신 전총리가 1998년 만든 정당 ‘타이락 타이’ 당이 몇번의 이름을 바꿔 20년 넘게 뿌리를 이어가고 있는 당이기도 하다.
2000년 대 이후 친탁신 당은 선거의 명수였다. 탁신이 당을 이끌던 2001년, 2005년을 비롯해 선거만 하면 대승했다. 태국인들이 가장 많은 동북부에 견고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덕이었다. 곡창지대인 태국 동북부 사람들에게 북부 태생이기도 한 탁신은 엄청 공을 들여 환심을 샀다. 태국 정치인들은 ‘포퓰리즘’ 정책의 결과라고 한다. 반(反)탁신파이자 태국 군부는 이런 탁신과 친탁신파를 견제하기 위한 헌법과 제도를 쿠데타를 일으켜 고안하고 바꿔놨지만, 선거만 하면‘ 백약이 무효’였다.
이번 총선 전까지 태국은 2000년 이후 3번의 총선을 치렀는데 모두 탁신파의 승리였다. 2006년 탁신이 쿠데타로 물러난 뒤 모두 6명의 총리가 들어섰지만 선거로 뽑힌 총리는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인 잉락 전 총리 딱 1명뿐이었다.
바뀐 룰은 이렇다. 과거에는 정권을 이끄는 총리가 되려면 하원의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면 됐다. 그런데 2014년 5월 정국 혼란으로 잉락 총리가 탄핵된 가운데 총리가 공석이 됐고, 이후 며칠 뒤 쿠데타를 ‘선언해(정부 주요인사들을 회의한다고 불러 구금한 뒤 다음 달 쿠데타를 했다고 선언함)’ 정권을 잡은 당시 육군총사령관 쁘라윳 찬오차의 현 정부는 상원 250명도 총리투표를 할 수 있도록 헌법을 뜯어 고쳤다. 그리고 상원 250명은 쿠데타 정부가 만든 NCPO(국가평화질서위원회)에서 임명하도록 했다. 결국 상원은 군부정권의 ‘굳은자(누가 가지게 될지 주인이 정해져 있는 물건)’인 셈이다. 비례대표 의석도 총 득표율에서 전체의석수를 곱한 뒤 지역구에서 확보한 의석수를 빼는 방식이 적용돼 푸어타이 당은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 137석을 얻었지만 비례대표는 한표도 건지지 못한 과거에 비해 '불리한' 결과를 안았다.
이런 바뀐 룰에서 친탁신파가 정권을 탈환하려면 총 상하원 총 750석의 과반인 지역구 375석을 확보하는 완벽한 ‘한판승’을 거둬야만 했다. 공정한 경쟁이 아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워야 한다는 분석 속에서도 선거만 하면 이기는 과거의 전력으로 봐 일부에선 푸어타이 당의 정권탈환 시나리오도 살짝 예상됐었다.
총선 하루 뒤 태국 ‘3.24 총선’ 결과는 94% 개표율을 기준으로 비례대표 포함, 친탁신 푸어타이 당이 137석으로 1위고, 2위는 118석의 현 쁘라윳 총리의 빨랑쁘라차랏 당으로 예상되고 있다. 쁘라윳 총리는 ‘굳은자’ 상원 250석+이번 선거 118석을 합친 뒤 군소정당 7석만 끌어들이면 과반인 375석을 넘어서 집권이 손쉽게 가능하게 됐다.
반면 푸어타이 당은 지역구에선 승리했지만 군소정당과 이리저리 연립을 해도 쁘라윳 총리의 ‘상원표’를 극복하긴 쉽지 않게 됐다.
지난 2011년 선거에선 265석이나 얻어 잉락 총리를 배출해 냈지만 이번엔 하원만 100석 이상이 줄었으니 어찌 해보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친탁신 푸어타이 당은 이번선거에서 총 득표수에서 조차 쁘라윳 총리의 당에 뒤졌다. 쁘라윳 총리의 당은 총 843만 표를 얻었지만 푸어타이 당은 792만표에 그쳤다. ‘선거의 명수’ 탁신의 영향력이 ‘마침내’ 감소했으며, ‘시위 없는 사회 안정’을 추구해온 군부정권이 지지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탁신이 실각한 2006년 이후 2014년까지 극렬한 거리 시위와 인명 사망, 이로 인한 관광객의 감소, 해외투자의 감소 등은 태국의 발전을 거꾸로 돌려놓은 요인 중의 하나였다.
또 하나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은 이번 선과결과가 나타내 주고 있는 태국 민심의 변화다. 친탁신과 반탁신으로 2등분됐던 태국인들의 정치성향도 다원화됐다.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당이자 탁신과 대립각을 세우며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연립정부를 이끌었던 민주당은‘ 확실한’ 쇠퇴기에 처한 느낌이다. 이번 선거에서 100석을 목표로 했지만 절반수준인 54석 전후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대표인 아피싯 전 총리가 선거패배의 책임을 인정하고 선거 날 저녁 당장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반면 신생 정당, 젊은 정당으로 반군부를 표방하며, 군부중심의 헌법개정, 국방비 감소, 정부의 투명성, 민주주의 제도의 강화를 외친 퓨처포워드 당은 총 87표를 수확하며 제 3당으로 떠올랐다. 진보적 색채의 이 당은 억만장자 타나톤 주앙룽루앙낏이라는 40세의 기업인이 이끌고 있다. 반 군부 연대에 나설 것을 밝히고 있어 현 정부가 집권을 이어갈 경우 무시못할 정권 견제세력으로 확장능력을 갖출 것이다.
총선의 결과가 공식 발표되기 전 쁘라윳 총리는 상원표를 단속하며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한 군소정당과의 연립에 공을 들일 전망이다. 이미 반군부 연대를 시작한 푸어타이당은 지역구 다수석을 차지한 정당이 연립정부를 우선 구성할 권한이 있다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미 친탁신 반군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선거 1주일이 지나자 거리로 뒤쳐나와 선거위원회를 비판하며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번 태국 선거에서 총 유권자 5천200만 명 가운데 투표율은 74.69%였으며 무려 200만 여의 표가 무효처리됐다는 것은 논란이 여지가 있다. 군부가 임명한 상원이 총리투표에 가세하게 한 집권군부의 헌법 개정은 훗날 태국역사에서는 쟁점이 될 것이 틀림없다.
현 정부가 향후 정국을 이끌게 되어도 여전히 제 1야당으로 남아있을 친탁신 푸어타이 당의 견제는 정국 운영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쁘라윳 총리가 재집권한다면 이제 ‘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사회안정을 이루고 경제성장을 해야하는 숙제를 안고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특히 올해 태국은 아세안 의장이어서 어깨가 더 무겁게 됐다.
태국정치와 선거는 사실 한국인들의 큰 관심사는 아니다. 다만 ‘옐로셔츠’와‘ 레드셔츠’란 색깔 시위대의 오랜 대립으로 국제공항이 폐쇄되고 백화점 앞에서 총탄이 날아다닌 과거 몇년간의 극심한 대립은 연간 200만 명이 넘게 태국을 방문하고 있는 한국 여행객들과 주재 한국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불편과 인내를 감수케 했다. 정권탈환에 실패한 반군부 연대가 거리로 나오면 혼란-쿠데타로 인한 ‘헤쳐모여’식의 과 태국 정치의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를 통해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빨리 정보가 공유되는 21세기에 더이상 전 근대적 방식으로 태국 정치체제가 바꾸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란다. 태국이 이번 총선을 발판으로 사회안정을 이루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평히 주어지는 민주주의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어 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