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을 위주로 제한적 입국 허용 범위를 넓혀가면서도 일반 관광객에 대해선 뚜렷한 방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구 7천만 명의 태국은 6월 26일 현재 누적 확진자 수 3,158명(세계 93번째)과 사망자 수 58명으로 ‘방역 최우수 국가 수준’이다. 지난 2월 존스홉킨스대 학은 태국을 세계 보건 안전지수 아시아 1위, 세계 6위라고 발표했고, 지난 6월 11일 말레이시아의 한 회사가 빅데이터를 돌린 ‘글로벌 COVID-19’ 지수 발표에서는 세계 2위에 올랐다. 두 발표를 보면‘방역 선진국’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보다 태국은 한 걸음 다 앞서 있다.
지난해 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이 세계 최다인 무려 1,099만 명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막 퍼지던 지난 1월 말 며칠 동안엔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만 2만 명이 넘게 들어왔다. 그런데도 태국은 바이러스 확진자가 별로(?)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했을 때 현재의 태국 방역은 두 가지로 해석될 듯하다. ‘도무지 신뢰할 수 없거나’, ‘세계 방역사에 남을 엄청난 성과’ 중 하나다.
누적 확진자 수와 치명률로만 보면 태국의 코로나 방역 수준은 세계 2위가 아니다. ‘월등한’ 세계 최고 수준이 마땅하다. 진단키트도 자체 개발해 쓰고 있고, 코로나 백신도 원숭이 실험 단계가 진행 중이다. 최근 신규 확진자는 ‘제로’ 또는 많아야 10명 이내. 6월 26일 현재 국내 전파자는 31일째 나오지 않고 있다.
일찍이 영리 병원 제도를 도입한 태국의 의료수준은 사실 매우 높다. 탁월한 관광 인프라를 엮어 중동, 유럽 등의 의료관광객을 유치해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는 지도 오래다. 태국의 영리병원 제도나 에이즈 관리 시스템 같은 것을 한번 살펴보라. 한국 관계자들도 다 놀랄 정도다.
이런 가운데 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초기 대응은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 같은 방식을 채택했다. 감염원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기 보단 유증상자 중 정도가 심한 사람만 검사했다. 코로나 증세가 의심되어도 서민들은 월급의 절반 수준인 검사 비용을 부담하기 불가능하다. 이러니 어떤 태국 사람은 감염됐는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확진자 수가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태국은 현재 단계에서는 자체 개발한 타액 검사를 포함한 검사 건수가 결코 적지는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팬데믹 상태에 이르자 태국 정부는 강력한 통제와 규제 정책을 택했다. 관광국가임에도 예상을 깨고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모두 ‘록다운’을 실시했다. 바이러스 확산 통제는 군대가 담당하고 있다. 야간 통행금지를 포함한 국가비상령으로 다중시설 이용을 제한하고, 외국인의 입국을 두 달 넘게 완벽히 막았다. 태국인과 가족을 이루거나 사업장을 가진 갖가지 사연을 지닌 외국인들이 수만 명은 될 텐데, 죄다 ‘꼼짝 마라’였다.
태국의 적은 확진자 수와 낮은 사망률은 결국 ‘높은 의료 수준’+‘선별적 제한 검사’+‘강력한 정부 통제’란 3박자가 나은 결과가 아닐까? 한국처럼 감염원 추적 검사를 처음부터 했다면 지금 같은 수치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가 비상령과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납득 받는’ 정부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정작 태국의 고민은 이제부터다. 강력한 규제정책으로 바이러스 확산은 잘 막아내고 있지만 국민들의 생계가 암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급속히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아세안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태국 중앙은행은 올해 경쟁 성장률을 -8% 대로 발표했다. 구직 사이트 JobsDB의 최근 조사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태국인 노동자 4명 중 1명이 직업을 잃거나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 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는 관광광업과 서비스 종사직의 타격이 커 ‘다 죽게 생겼다’는 통계자료를 하루가 멀다않고 내놓고 있다. 그런데도 규제완화나 외국 관광객 입국하게 해달라는 요구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세게 못하는 모습이다. 여러 사람 모이면 잡아가는 국가비상령도 있고, 그 격렬했던 시위 문화도 몇 년간 군부가 평정하며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태국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직접 효과 12%, 관련 효과까지 하면 20%는 넘는다는 게 공식화된 통계. 국가 문을 걸어 잠그는 동안 올해 관광객은 전년도의 5분의 1도 채 안 되는 800만 명 미만으로 예상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태국은 국가 간 지정된 구역을 격리 없이 여행하는 ‘트래블 버블’이라는 것을 내놨다. ‘트래블 버블’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상대국의 동의를 얻어 협정을 맺는 방식이다. 태국은 바이러스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중국,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뉴질랜드 등이 그 대상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짝사랑’에 가깝다. 한국만 해도 외국 유입자의 바이러스 전파가 이어져 단기 입국자는 예외없이 시설 격리하도록 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한국이 태국인만 상태로 시설격리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시기 상조다.
‘시설격리 제외’를 원칙으로 하는 ‘트래블 버블’은 ‘구체 조정’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태국은 ‘트래블 버블’을 곧 할 것 같더니 8월에야 가능할 것 같고, 그것도 ‘빌라 격리’ 처럼 숙소에서만 머물고 여행은 하기 어렵다는 당국 관계자의 의견도 최근 나왔다. 그만큼 조율이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외국 관광객을 받고 싶으면, 일정한 방역 준칙을 내세워 자체 허용하면 되는 것이지 외국과 조건을 조율하고 굳이 협정까지 맺을 이유가 뭔지는 좀 궁금하다. 태국은 국내 관광 진작을 위해 공짜 바우처를 뿌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태국의 방역 우선 정책이 이어지는 동안 외국 관광객 유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관광 관련 기관은 속이 타 들어간다. 태국 여행사 연합회(Atta) 회장은 6월 25일 “중국 20개 주는 최근 30일 이상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라며 정부가 중국 정부와 상호협정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루에 우선 200-300명씩 받기시작하자는 제안도 했다.
반면 태국 보건정책에 영향력을 미치는 쭐라롱꼰대학 의학부의 티라 교수는 6월 25일 의료 또는 웰리스 외국 관광객의 입국에 대한 경고를 보냈다. 국가안보위원회 간부도 ‘트래블 버블’은 당분간 실시될 수 없고, 2개월은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위사누 부총리는 일본 경제단체 JETRO에서 수천 명의 경제인들이 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알려와 6월 29일 COVID 상황 관리 센터에서 논의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야말로 정부와 단체의 의견이 뒤엉켜 혼재된 상태다.
태국 보건당국과 정부 관계자들은 국내 다중시설 이용 제한을 완전히 풀고 외국인까지 받게 되면 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당연히 늘어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통제 가능한 바이러스 수준을 유지하며 경제 회복 정책을 함께 시도해야 하는 게 ‘정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것이 예상도 쉽지 않고 맘대로 조절되는 것도 아니다. 재확산돼 의료체계가 붕괴되면 경제적 부담이 훨씬 더 커진다는 공감대가 태국 정책결정자들의 마음속에도 깔려 있다. 싱가포르, 러시아 등 사례들을 보며 학습도 됐다. “이쯤 됐으니 이젠 관광객 받자”라며 누구 하나 선뜻 총대를 메고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니 일반 외국인 관광객의 태국 전면 입국 허용 기대는 난망(難望) 한 일이고,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난해 188만 명의 한국인이 태국에 왔고, 60만 명의 태국인이 한국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