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야생 코끼리의 수난과 인간과의 갈등
육상 최대 몸집의 코끼리는 선한 이미지만 떠올리게 한다.
느릿느릿 걷지만 우리나라의 숱한 동요에도 등장하며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늘 막판에 ‘짱’하고 나타나 정의의 편에 서는 동물이다.
‘코끼리의 나라’로 불리는 태국에서는 정겨움을 넘어 신성시되어 왔다. 코끼리 한 마리가 이유없이 죽은 채로 발견되기라도 하면 언론들은 일제히 보도한다. 태국어로 동물을 세는 단위는 뚜어(마리)인데, 코끼리만은 ‘츠억’이란 수량형용사를 붙여 특별대우 한다.
2014년엔 방콕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아유타야의 한 코끼리 캠프에서 프라이 크라오(Phlai Khlao)란 이름을 가진 수컷 코끼리가 사체로 발견됐다. 체중 4.9톤의 이 코끼리는 상아를 노린 사람에 의해 독이 든 바나나를 먹고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프라이 크라오는 2004년 올리버스톤 감독이 만들고 한국에서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알렉산더왕’에 출연했던 코끼리였다. 태국 고대의 전투장면에서 전사를 태우고 등장했었다. 코끼리 한 마리의 죽음에 대해 태국 언론들은 어느 유명 인사의 죽음보다 크게 보도하고 주인은 승려를 불러 장사까지 지냈다. 태국에선 또 지방마다 ‘코끼리의 날’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 태국 코끼리는 태국인들에게 ‘종교성’ 마저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한국의 농경시대에 가난한 집안의 ‘올인올’ 로 여겨졌던 소의 존재감을 훨씬 뛰어넘는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 되어 가고 있다. 태국에 사람과 코끼리와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2012년부터 2018년 까지 107건의 충돌이 공식 보고돼 사람이나 코끼리가 죽거나 다쳤다. 신성시되던 코끼리의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 중이다. 코끼리 보호단체인 ‘아시아 코끼리의 친구(FAE, Fiends of the Asian Elephant)’에 따르면 40년 전 태국에는 4만 마리의 코끼리가 있었지만 현재는 5천 마리도 안된다. 이중 야생이 3천여 마리다.
객사하는 야생 코끼리의 숫자는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사망의 72%는 전기 울타리 감전에 의해서다. 코끼리 부상의 57%는 자동차 사고다. 전기 울타리는 사람들이 야생 코끼리의 습격을 방지하기 위해 세운 것이고 보면 코끼리의 사망은 결국 인간과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사람의 피해도 급증 추세다. 최근 6년 동안 야생 코끼리로 인해 사람 45명이 사망했다. 코끼리와 갈등을 겪는 지역도 2003년엔 20군데였지만 현재는 41곳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야생 코끼리 서식공간이 줄어드는 데서 출발한다. 1961년 태국 산림은 27만 평방킬로미터였지만 2011년엔 17만 평방킬로미터로 감소했다. 코끼리 한 마리가 충분한 먹이를 확보하려면 100 평방킬로미터가 필요하고, 먹이를 찾아 하루에 6평방킬로미터를 이동한다. 산림이 감소하자 야생코끼리들은 사람의 농경지와 주거 공간으로 내려오기 시작했고, 이를 막기 위해 사람들은 전기울타리를 설치하고 있는 것이다. 태국에서 코끼리의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은 차층사오, 찬타나부리, 쁘라친부리, 깐차나부리 등이고, 동부산림지대는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2008년 이후 민-관이 코끼리와 사람 간의 충돌을 방지하는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으며, 2014년 이후에는 태국 정부차원에서 대책마련을 하고 있다. 야생 코끼리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소금펜스 설치, 야생코끼리 먹이를 위한 작물 재배 등이 그것이다. 줄어드는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태국 북부엔 코끼리보호구역도 있고 람팡이란 곳에는 세계 최초의 코끼리 전문병원도 있다. 코끼리를 보호하고 공존하려는 노력이 전개되고는 있지만 산업화에 따른 산림 감소 등 근본적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 한 요원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제는 야생 코끼리가 단지 음식만을 위해서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행동변화가 일고 있다는 우려 섞인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태국에 살고 있는 5천여 마리의 태국 코끼리 중 1천여 마리는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북부 산간지역에서 통나무 등을 운반하는 일을 한다. 또 1천여 마리는 관광업에 투입되고 있다. 태국 전역에는 70개의 중소규모 관광지에서 ‘코끼리 탤런트’들이 활동 중이다. 한국인이 파타야, 푸켓 등 태국관광 중에 타는 코끼리는 이 1천여 마리 중의 한 마리인 셈이니 귀하기 그지없는 라이딩인 셈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코끼리는 딱 두 종류. 아시아와 아프리카 코끼리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최대 몸길이 7.5m, 몸무게는 6.5톤에 이른다. 태국 등에 서식하는 아시아 코끼리는 아프리카 코끼리보단 좀 작지만 몸무게 5톤 이상이고, 몸길이도 6m가 넘어 코끼리 등에 타보면 2~3층 높이에 올라와 있는 기분이다. 하루 평균150kg이상의 음식과 40L의 물을 마시니 하루 종일 먹고 마시는 모습만 본다. 60~70년의 수명이지만 임신기간 21개월에 한번에 한 마리 밖에 새끼를 낳지 않는다.
느릿느릿 굼뜬 듯 하지만 코끼리의 공격은 치명적이다. 100m 달리기 주파기록이 9.2초로 5톤의 몸무게가 덧 보태 지면 ‘혹성충돌’ 수준이 아닐 수 없다. 관광지에서 길들인 코끼리는 콧잔등 위에 아이들을 태워주고, 축구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때론 마사지하는 흉내도 내지만 경계심을 늦춰선 안된다. 흥분한 코끼리가 관광객을 등에서 떨구는 사고도 발생한다. 특히 산길에서 차를 몰다 야생 코끼리를 마주치는 것은 더 이상 동화 속의 ‘코끼리 아저씨’를 만나는 일이 아니다. 실존 위험이 될 수도 있다. 이럴 때 전문가들은 다음처럼 행동요령을 권고하고 있다.
▲코끼리로부터 최소 30m는 떨어져라. ▲코끼리가 다가오면 조용히 천천히 차를 후진시켜라. ▲절대 경적을 울리지 마라, 코끼리는 소리에 민감하다. 큰 소리가 코끼리를 흥분시킬 수 있다.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지 마라. ▲자동차 엔진을 켜 둬라. 하지만 가속페달은 밟지 마라, 코끼리는 낮고 은은한 엔진소리에 적응돼 있다. 소리가 나지 않으면 오히려 뭔가하고 다가올 수 있다. ▲야간이라면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 둬라, 코끼리의 움직임을 살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향 지시등은 켜지 마라. 코끼리 호기심을 부추길 수 있다.
태국은 연중 뜨듯해 식물이든 동물이든 뭐든 잘 자라고 풍부한 축복받은 환경의 나라다. 모든 문제는 일방의 욕심이다. 태국 코끼리의 문제를 보면, 사람의 사이든 사람과 동물의 문제이든 더불어 공존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