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야생 코끼리의 수난과 인간과의 갈등
불금. 이른바 불타는 금요일. 태국도 남김없이 소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불금용 의상을 준비해 출근하는 직장인도 있다. 금요일 저녁. 방콕 동쪽 끝자락에 있는 센트럴 이스트빌 백화점. 이곳은 애완견과 함께 출입할 수 있는 컨셉트로 히트친 곳이다. 송아지 만한 개와 밤톨 만한 치와와까지 매일 ‘개 세상’이 펼쳐지며 북적인다.
애완견 통로에 인접한 센트럴 식품매장. 태국 중산층이 장보는 곳으로 신선식품부터 육류, 제과까지 산해진미의 식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10여개의 식품 통로 중 가장 돋보이는 곳은 정 중앙 20번 라인의 라면, 제과, 장 류 코너. 이 곳에선 각국의 식품들이 자신들이 ‘출생’한 나라의 국기를 달고 ‘월드컵’을 벌이고 있다. 코너의 ‘2강’은 단연 한국과 일본이다. 홈 구장인 태국 제품이 더러 눈에 뜨이지만 축구 잘하는 유럽국가 이탈리아, 독일 국기도 구석으로 밀려나 체면을 잔뜩 구기고 있다. 각 나라 국기까지 달아 놓고 음식 팔려는 태국 백화점의 상술이 짓궂다! 식품비즈니스는 하지 않지만 만만찬은 수의 일본 국기를 보니 한국인의 입장에선 경쟁심이 부글부글 치밀어 오른다.
20번 코너로 들어서면 일본 장 류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각종 간장과 소스들이 일본 글자와 일장기를 달고 손님을 맞는다. 꾹 눈감고 지나치면 한-일 라면의 격전지가 시작된다. 한 눈에 봐도 한국라면의 우세승. 전시된 한국 라면의 품목만 20여 종이 넘는다. 포장과 제품명도 기발하다. 불닭볶음면, 보들보들 치즈라면, 열라면, 해물탕면, 남자라면, 화라면, 우동김찌찌개. 컬러플한 디자인까지 재치만점이다. 그동안 태국 소비자들로부터 오랜 선택을 받아왔을 법한 일본 라면들은 웬지 시원찮아 보인다. 포장 컬러도 그렇고 종류도 적다. 가격 경쟁력도 한국라면이 높다. 제품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한국 컵라면은 39 바트에서 57 바트. 대체적으로 일본 ‘라멘’보다 싸다.
통계를 찾아봤다. 태국은 지난 2017년부터 한국라면 수출 주요 5개국에 포함됐다. 태국에선 2018년 1분기에 576만 달러가 팔렸다. 동남아에서 한국라면 최대 수입국으로도 부상했다. 급성장해 일본 다음으로 4위를 했다는데, 이 통계 맞나 싶다. 아마도 올해 말쯤엔 뒤바뀔 게 틀림없다는 확신이다.
라면 전시대 양 옆 끝 쪽으로는 한-일 장 류들이 배치돼 원거리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데, 뒷부분에 위치한 한국 장 류는 일본에 다소 밀리는 형국이다. 참기름, 물엿, 돈까스, 불고기 양념, 마요네즈 등 10여 가지가 태극기를 달고 분투 중이다. 크고 작은 다양한 용기에 담겨 30여가지 이상이 전시된 일본 소스들에 비하면 중과부족이다.
하지만 중앙무대로 눈을 돌리면 ‘오, 필승 코리아’가 절로 나온다. 초코 프레첼, 젤리, 초코파이, 쿠크다스 등의 한국과자들이 매대를 모두 점령하고 태극기 휘날리고 있다. 그 아래에는 비닐 용기에 담긴 일본 젤리들이 머리 수그린듯한 포즈로 자리잡았다. 20번 코너 옆 통로 입구에는 크기도 포장도 독특한 한국 빼빼로들이 마을 지키는 ‘장승’처럼 꼿꼿한 기세로 진열돼 있다. 일본과자가 즐비한 앞쪽 오른쪽 코너엔 한국과자 고추냉이 꽃게랑이 집게발을 벌리고 1당 백으로 일본 과자들을 상대하고 있다. 이 코너에서 쇼핑 중인 쿤 판(27)이란 태국 여성은 일주일에 두 번은 이 코너에 들른다고 말했다. 전에는 일본 식품을 자주 샀지만 이제는 태극기 앞에 멈춘다고 했다. K-POP 가수와 드라마 등으로 한국이 친숙해 진 뒤로 맛도 한국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한국식품은 매운 라면류다. 곧 방콕에서 한류 행사가 크게 개최되며 한국식품 프로모션 이벤트도 열린다고 하자 반색한다.
K-Food의 수출 성장세는 눈부시다. 농림축산부와 한국농수산식품 유통공사 등의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수출액은 91억5300만 달러. 성장주역은 라면, 소스류 등 가공식품이 일등공신이었다. 이중 태국의 성장은 탁월했다. 2017년 수출실적이 43.1%나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 가공식품을 홍보하는 공기업이나 수입업자들의 홍보, 마케팅 전략도 영리해(?) 보인다. 가공식품, 과자류, 즉석식품 등이 젊은 층에 어필한다는 것을 꿰고 있는 모양이다. 한류 소비자 들이기도 한 이들 젊은 층이 가는 곳엔 한국식품 홍보행사가 빈번히 열리는 것을 보게 된다. 백화점 매장 직원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일본 식품이 대세였지만 요즘은 한국 라면의 판매가 부쩍 늘었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한국과자가 인기”라며 “더 늘 것 같다”고 말했다. 마침 이 매장에선 일본 식품특별 판매기간이었지만 한국식품은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매장을 나오면서 한국 식품이 일본 식품을 압도하길 바라는 마음이 뭉게구름처럼 피어 올랐다. 한국은 땅도 물도 좋은 곳이니 한국 식품이 건강에도 좋을 거라며 태국인 붙잡고 말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라면마다 과자마다 붙여 놓은 태극기와 일장기가 유독 눈에 들어온 탓이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