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데일리피플 | DailyPeople

남들 다 가는 스페인, 포르투갈<6> 톨레도(Toledo)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마드리드-프라도 미술관-톨레도-솔 광장-마요르 광장

하루 종일 있고 싶은 프라도 미술관
오늘은 톨레도(Toledo)를 가는 날이다. 종일 톨레도에서 보낼 계획이다. 8시에는 아토차(Atocha) 역에서 톨레도 행 기차(renfe Avant)를 탈 생각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My Taxi앱으로 차를 불렀는데 정확한 시간에 오고, 요금도 정확하게 계산해 준다. 역에서 기차표를 사려니, 아뿔싸 오전 기차는 다 매진이다. 제일 빠른 기차가 2:20. 할 수 없이 그 기차와 19:20에 돌아오는 기차표를 구입했다. 톨레도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7시간인 셈이다.

뜻하지 않게 오전 시간이 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내는 톨레도에서 온종일을 보내고 싶어 했지만, 나는 프라도 미술관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다는 듯이, “가까운 프라도 미술관에 가자~”. 마드리드에서 2박을 하는데도 밤에 도착하고, 오전에 나가는 일정으로 잘못 짜는 바람에 톨레도 외에는 계획을 잡지 못했는데 전화위복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아토차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10시에 미술관이 오픈하는데, 9시가 조금 넘으니 사람들이 슬금슬금 모여든다.

미술관에는 입장을 할 수 있는 출입구가 여러 곳이다. 미리 예매를 하고 온 사람들과 현장에서 티켓팅을 하는 사람들의 입구가 다르다. 단체 관광객은 또 다른 입구로 들어간다. 이럴 때는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다. 멋모르고 다른 사람들 따라서 한참 줄 서 있다가 뒤늦게 알면 시간이한참이나 더 걸린다.

입장을 기다리며 보니 올해가 프라도 미술관 개관 200주년이다. 1819~2019라는 커다란 포스트가 여기저기 붙어 있고, 외벽도 그에 맞게 공사를 하는 모양인지 천으로 덮어 놓은 곳도 보인다. 이런 미술관을 가진 지가 200년이나 되었단다.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이 경복궁에 개관한 것이 1969년이니 50해가 되었다. 미술관의 나이만으로 그 미술관의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기가 죽을만하다. 유명미술품이 많아서인지 여기서도 가방 검사가 철저하다. 입장 후에는 들고 있던 가방은 보관소 맡겼다. 미술관 내에서는 들고 다니기에 불편하니 맡기는 것이 좋다.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도 있는데 하루 이상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 거라면 몰라도, 단지 몇 시간을 보내는데 오디오가이드까지 들으면 그림을 많이 볼 수 없다. 가방을 맡기고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바로 올라갔다. 대개 사람들은 1층부터 관람하다위층으로 올라온다. 위층은 역시나 사람이 적었다. 천천히 그림을 감상하다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사진 찍으면 안 되는 줄 몰랐는데 안내원이 와서 찍지 말라고 일러준다. 카탈루니아 미술관에서는 플래시만 사용하지 않으면 그림을 맘대로 찍어도 되는데, 여기서는 안된다. I’m sosorry~ 프란시스 고야, 엘 그레코, 디에고 벨라스케즈 등등 책에서만 보던 수많은 그림들, 눈이 호사다. 게다가 한 점에 1천억 원이 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인상적인 조각품들도 전시되고 있어서 15유로가 아니라 150유로를 주고서도 아깝지 않을 듯했다. 미술관은 사실 몇 시간 만으로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무리 못해도 하루 온종일은 머물러야 한다. 아침에 들어와서 점심 먹고 보고, 간식 먹고 보고, 그러다가 문 닫는다고 나가라고 할 때까지 봐야 한다. 둘러보다가 문득 내 눈에 꽂히는 그림이 있으면 그 앞에 앉아 오래도록 눈을 박고 있는 것도 좋다. 그림을 계속 보고 있으면 뭔가 느낌이 온다. 게다가 폼도 난다. 그림에 대해 서 좀 아는 사람처럼 있어 보이는 거다. 그런데 아쉽게도 오늘은 폼 잡고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느린 시간의 도시, 톨레도
다시 아토차(Atocha) 역으로 되돌아와서 톨레도행 기차를 탔다. 오전에 기차표를 예매하고 나서 어디서 기차를 타는지 미리 챙겨 보고 갔기 때문에 길을 헤매지 않았다. 기차는 우리의 KTx와 비슷한 수준이다. 중간에 정차하는 곳 없이 논스톱으로 톨레도까지 간다. 100km가 채 안 되는 거리인데, 자동차로 가면 2시간 가까이 걸리지만 기차로는 4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창밖 풍경이 색다르다. 작은 언덕과 들판뿐이다. 시선을 멀리 둬도 작은 산 하나 보이 않는 평지다. 좋은 햇볕에 농사가 참 잘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창 들고 말 타고 다니며 싸움하기도 참 좋겠구나 싶었다. 또 심술인가? 30여분 만에 기차에서 내려 역 건물로 들어가니, 15세기에 스페인의 수도가 마드리드로 옮겨가기 전까지 번성했던 톨레도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걸어서 관광을 하려던 계획을 바꾸어, 버스를 타고 톨레도의 가장 높은 곳(버스 종점)까지 간 다음에 천천히 내려오면서 둘러보기로 했다. 역앞에는 거의 대부분의 버스가 온다. 종점까지 가는데도 15분 정도 걸리니, 이 도시가 얼마나 소박한 크기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알카사르(Alcazar)에서부터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면서 대성당, 박물관, 산 마르틴 다리를 둘러봤다. 특별히 어디를 꼭 봐야 하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도시의 매력은 느리게 가는 시간이다. 천천히 걸으며 오래된 벽돌과 건물,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 그 건너 넓게 펼쳐진 들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것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좁을 골목 끝 어딘가에서 문득 만나게 되는 공터 카페에 앉아 맥주 한잔을 홀짝이면 시간은 더 느리게 간다.

한참을 걷다 무심코 버스를 탔는데, 그 버스가 우리를 다시 알카사르에 데려다주었다. 원치 않게 원래 자리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러고도 기차 시간이 많이 남아 소코베도르 광장 벤치에 앉아 한참이나 사람 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역까지 내려와 기차표를 좀 이른 시간으로 바꾸어 일찍 마드리드로 돌아가려고 했더니 전 좌석이 매진이란다. 어디 쉴만한 카페를 찾아 걷다 보니 인터넷으로만 봤던 에스컬레이터를 만났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 보니, 소코베도르 광장 바로 아래쪽에 있는 미로데로(Mirodero) 전망대다. 내려갔다가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톨레도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그곳 카페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버스를 타고 다시 역으로 내려왔다.

수많은 언어를 품은 마요르 광장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솔 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 있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무슨 일이지?’ “What happen?”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무슨 행렬이 지나갈 거라고 한다. 좋은 구경거리가 있나 싶어 기다렸다. 1시간 이상을 기다린 후에 보니,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있는 모습을 커다란 가마에 올리고, 그 가마를 사람들이 메고 지나간다. 가마 뒤에는 십자가를 진 교인들과 악대가 음악을 울리며 따른다. 부활절을 맞아 광장 주변을 돌며 예수의 고행을 재현하는 행사인 줄을 나중에야 알았다. 방송에서도 실시간으로 내 보내는지 옆사람이 핸드폰으로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수의 희생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 마음 속에 제각각의 뉘우침 하나씩을 심어 주었으니라. 행사 중에 비가 내렸다.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솔(Sol) 광장 앞에 유명한 마요르(Mayor) 광장이 있다. 숙소 가는 길에 저녁을 먹을 겸 광장 옆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비 오는 광장을 보고 싶어 야외 천막 밑에 앉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더 쌀쌀하다. 맥주와 빠에야를 주문했다. 비를 피해 길가에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던 아프리카 사람들도 등짐을 지고 다들 철수한다. 아프리카계 한 명이 가까이 와서 눈을 마주치더니 팔찌를 1개 1유로에 사달라고 한다. 2개에 1유로 하자고 했더니 오케이 한다. 돈을 받으며 “쇼크란~(아랍어로 고맙다는 뜻)” 한다. 자기도 모르게 아랍어가 나온 모양이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세네갈이란다. 아는 아랍어를 몇 마디 했더니 무슬림이냐고 묻는다. 하긴 며칠 동안 수염도 기르고 있었으니 그렇게 보이기도 했겠다. 낮에 톨레도의 소코베도르 광장에서 아이 다섯을 데리고 있던 젊은 부부와도 아랍어로 몇 마디 했는데, 그들은 시리아에서 왔다고 했다. 아랍어를 쓰는 사람들과는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든다. 처음 와 본 낯선 땅 스페인에서 시리아 사람과 세네갈 사람을 만나 몇 마디 아랍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텅 빈 마요르 광장 한가운데에서는 카페의 불빛을 받으며 빗방울들이 제각각 튀어 오른다.